해외 비즈니스 이벤트 교과서는 무엇을 담고 있을까?

교과서는 원론의 집합체다. 무언가를 이해함에 있어 필요한 뼈대와 근간을 배우게끔 한다. 출발점을 제시하는 셈이다. 이를 토대로 보면 MICE산업을 조망하는 교과서는 해당 분야의 배경과 흐름을 다룬다고 볼 수 있다. 교과서의 과거와 현재를 보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양되는 것과 새로운 표준이 되고 있는 것들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과거 산업혁명 보다 10배 더 빠르게, 300배 더 큰 규모로 변화하고 있는 오늘날, MICE산업 또한 팬데믹 이후 3년간 가파른 격변의 시기를 견뎌왔다. 대대적 전환기 속에서 교과서의 내용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과거의 교과서는 MICE 행사 개최 방법에 대한 실무적 기초지식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던 반면, 오늘날에는 행사 이외로 고려해야 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다루며 건강한 생태계 구축을 지향하고 있다. 과거 행사기획전략 파트의 마지막 소제목 중 하나에 그쳤던 ‘친환경 행사 기획 방안’은 오늘날 지속가능성이라는 대주제 아래 핵심적 입지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행사기획 측면에서도 운영에 관한 지식을 매우 단편적으로만 다루었던 과거 교과서와는 달리 최근의 교과서는 경험 디자인, 가치설계 등 가치창출을 위하여 보다 확장된 지식을 담고 있다. 
앞으로 MICE산업의 표준은 무엇으로 구성될까? 이에 대한 조언을 찾기 위하여 지난 11월 첫 발간을 알린 호주 그리피스대학교(Griffith University) 찰스 아르코디아(Charles Arcodia) 교수의 ‘비즈니스 이벤트 교과서(Handbook of Business Events)’를 살펴보고자 한다.


연구 테마의 변천사는 시대별 MICE산업의 주요 이슈를 담고 있다. ‘비즈니스 이벤트 교과서’의 집필진이 조사한 1990년대부터 2019년대까지의 연구테마를 살펴보면, 1990년대부터 2000년 초반까지는 MICE산업의 경제적 가치를 측정하는 연구와 개최지 선정에 대한 주제가가 대세였다. 당대 연구자들은 MICE 행사를 통한 직접지출효과를 측정하는 방법을 연구하며 ‘MICE’라는 산업적 정의를 명료화하고 그 입지를 강화하고자 하였다. 또한, 개최지 선정과정과 의사결정과정을 세분화하여 컨벤션뷰로 및 국가관광기구의 국제회의 마케팅 전략수입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2010년대부터 새로운 아젠다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호주 모나쉬대학교의 마이어 주디스(Mair Judith) 교수는 144편의 선행연구를 분석하며 “지난 연구들은 경제적 파급효과에 치중된 모습을 보였다”며 “이제는 MICE 행사가 일으키는 사회적, 환경적 영향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이후 연구들은 탐색주제에 깊이를 더해갔다. 개최지 선정과정이라는 보편적 기준을 연구하는 것을 넘어 행사의 종류와 규모에 따라 선정기준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도 진행되었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파급효과가 큰 대형 공공행사(Public event) 뿐만 아니라, 기업행사와 같은 중소형 민간행사(Private event)가 창출하는 가치에도 관심이 이동하게 되었다. 
2016년부터는 중국의 급격한 성장에 따라 아시아권이 신흥 MICE 시장으로 부상하면서 관련 연구들이 다수 진행되었고, 국제 경쟁 과열에 따른 차별화 전략으로 유니크베뉴의 개념이 고개를 들었다. 가상행사에 대한 연구는 2017년부터 본격화되었다. 당시 관련 연구를 진행한 콜롬비아대학교의 캐롤 속스(Carole Sox) 교수와 연구진은 가상/하이브리드 행사라는 새로운 방식의 확산을 일찌감치 예견하였으며, 노스텍사스대학교의 김영훈 교수는 가상/하이브리드 행사에 대한 참가자 인지 현상에 대한 연구에 발 빠르게 착수하였다.
기술적용에 대한 논의에 열기가 더해지자 참가자 행동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2019년부터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중국 닝보대학교의 난왕(Nan Wang) 교수는 참관객과 전시회 간의 상호교류 요인을 분석하고 이론적 모델링을 제시하는, 행동학적 연구를 수행하여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서적을 통해 아르코디아 교수는 “앞으로 MICE산업의 경쟁력은 ▲비즈니스 이벤트에 대한 국가경쟁력 강화와 ▲전략적 행사기획 역량 증진, ▲MICE 행사 가치사슬의 다각화에 따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중 국가경쟁력에서는 여느 역량 중에서도 인적자원개발을 강조했는데, “팬데믹 이후 극심한 인력난에 시달렸던 환대산업은 변화 대응에 필수적인 인적자원을 비롯한 사회적 자원 개발 전반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필진은 아시아권 MICE산업 인적자원개발의 우수사례로 태국을 꼽으며 해당 국가에서 추진되고 있는 다양한 교육사업을 소개했다. 
행사기획 전략 파트에서는 PESTEL 분석모델의 중요성을 재조명했다. 급변하는 외부환경에 대응하려면 정치, 사회문화, 경제, 기술, 환경, 법 등 산업과 시장을 이루는 전반의 요소들에 대한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를 토대로 행사의 실현가능성(Feasibility)을 점검해봐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필진은 “행사 개최 전 PESTEL 분석을 해봄으로써, 재정적 실현가능성, 행사의 실질적 기능과 역할, 마케팅 전략, 인적자원 관리전략 등에 관한 사전 계획을 종합적으로 수립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MICE 행사를 둘러싼 가치사슬도 달라지고 있다는 전망도 제시되었다. 필진은 “과거 MICE 행사를 개최하려면 바이어를 관리하는 아웃바운드 에이전시와 개최지에서의 행사 경험을 관리하는 DMC 및 서비스공급업자 등을 통해야만 행사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불변의 공급망이라 여겨졌던 각 채널들을 거치지 않고 주최자가 직접 모든 행사 자원들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며 “디지털 전환이 낳은 플랫폼이 탈중개화(Disintermediation)를 야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또 “MICE산업 내의 탈중개화 현상은 업체 간 갑을, 상하를 나누는 계약관계를 벗어나 진정한 협업체계 구축을 요구한다”며 “시장에 새로운 시나리오를 가져다주고 있다”고 말했다.

[참고자료] TECEB이 추진하고 있는 자국 MICE 경쟁력 강화 사업
2023년 3월 기준, 태국 MICE산업은 750억 바트(한화 약 2조 7,999억 원) 상당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인력수급 불균형 문제가 극심한 가운데, 약 6만여 명의 일자리 창출효과를 내는 MICE산업은 태국에게 효자산업이 아닐 수 없다. 이에, 태국은 MICE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양한 지원사업을 내놓고 있다. 특히 TCEB은 풍부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아시안권 MICE 교육의 허브를 표방하고 있다.

▲태국에서 개최된 국제행사의 참가자수 및 직접지출효과(2022년 8월~2023년 3월 기준)
  • MICE 아카데미 운영 : 관련 분야 종사자들의 스킬 개발을 지원하는 교육 프로그램임. 관리주체인 TCEB을 주축으로, 태국전시협회(TEA), 행사관리협회(EMA), 태국인센티브컨벤션협회(TICA) 등이 참여하여 전문역량 강화를 위한 다양한 강좌를 제공하고 있음.
  • 무역 교육 운영 : 국제전시주최자협회(IAEE) 및 국제회의전문가협회(MPI) 등과의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회의전문가 자격증(CMP) 및 전문주최자 자격증(CEM) 취득을 위한 교육과 부트캠프 프로그램 등을 내놓고 있음.
  • 캐퍼빌리티 플러스 프로그램 운영 : 의사결정권자 및 대표자급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일종의 마스터클래스 강좌임. MICE산업 리더를 위한 리더십 스킬, 혁신 및 기획 강좌 등을 제공하고 있음.
  • 아세안 MICE 경제 커뮤니티 운영 : 10여 개 국가가 참여하는 커뮤니티로, 최신의 글로벌 MICE산업 소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는 ‘MICE 인텔리전스 센터(Intelligence center)’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아시아 커뮤니티의 동반성장 기반을 마련하고자 함.
  • MICE 지속가능성 및 행사 표준 수립 : 친환경 MICE 산업 형성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는 태국은 관련 분야의 지속가능한 마케팅 툴과 친환경 실천 방안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음. 이러한 연구를 토대로 ‘태국 MICE산업의 지속가능한 로드맵’을 수립, 업계의 현장 의견을 더하여 지속가능한 행사의 표준을 정립하고자 함.

예로부터 MICE산업의 가치는 경제적 파급효과에 근간을 두었다. 2013년 UNWTO는 “미팅, 컨퍼런스, 전시회, 인센티브투어 등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 간의 경제구조”라고 MICE산업을 정의하였다. 그러나 필진은 “직접지출효과에만 주목하는 근시안적 시각에서 벗어나 사회경제 시스템 전반에 대한 가치탐색이 필요하다”며 “일면만 맹목적으로 조명하다 보면 MICE산업이 낳는 부정적 경제효과를 간과할 수 있다”고 일침하였다. 이들이 말하는 부정적 경제효과는 지역 커뮤니티가 행사 개최로 인한 혜택에서 배제되는 경우와 성과에 대비하여 개최준비에 투입된 공적 자원이 더 큰 경우를 의미한다. 이에 아르코디아 교수는 “경제적 효과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가치와 지역민 삶에 실질적으로 미치는 영향, 참가자 개인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 등 여러 파급효과를 복합적으로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아르코디아 교수는 사회문화적 파급효과 측정에 참고할만한 KPIs(Key Performance Indexes)로 2007년 발표된 ‘MICE 행사의 개최효과 측정 요소(Typical impact measurements for meetings and events)’를 재조명했다. MICE 행사의 지속가능성과 ROI를 측정하는 ROI인스티튜트(ROI Institute)의 회장 잭 필립스(Jack Philips) 박사가 제안한 측정요소는 형태별(총 25개) MICE 행사의 핵심성과지표로 구성되어 있다. 20여 년 전에 제안된 측정지표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여전히 활용이 미비한 지표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지표들은 대부분 행사 개최 이후에 중장기적으로 추적관리 되어야 하는 항목들이다. 행사 참가 이후의 직업 만족도, 생산성 증가 여부, 스트레스 완화 수준 등이 예가 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지표들은 측정하기도 매우 까다롭고 모호한 면이 있다. 단순히 행사기획자 또는 주최자만의 숙제로 떠안길 수 없는 노릇이다. 이를 바탕으로 필진은 “사회문화적 파급효과는 MICE 행사를 둘러싼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해야 측정이 가능하다”며 “오늘날 강조되는 환경적 요소와 지역 커뮤니티에 환원되는 혜택까지 반영한 파급효과 측정 체계가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참고자료] B2B 무역전시회와 사회적 가치의 상관관계
필진은 B2B 무역전시회도 사회적 파급효과를 측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2011년 실시된 선행연구를 토대로 “전시회 참가를 통한 사회적 가치 창출이 예상될 때 전시회 만족도, 재방문율, 부스참가비 지출 의향 등 모든 의사결정 요소에 매우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말했다. 즉, 발전을 위해서는 무역전시회를 개최하는 주최자들도 자사의 행사가 사회문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지 관리‧감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속성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보아야 할까.
아르코디아 교수는 B2B 전시주최자들이 참고할만한 가치측정 지표로 2016년 EDHEC경영대학교의 쿠마 란잔(Kumar Ranjan) 교수가 제안한 ‘공동가치 창출 모델(Value co-creation; measurement parameters)’을 제시했다. 참관객, 참가업체 사이에서 발생하는 지식교류 및 가치공유와 같은 각종 상호작용에서 파생되는 공동생산(co-production)시스템과 개인경험, 개인맞춤화, 개인과 개인의 관계성에 비롯된 사용가치(value in use)가 맞물릴 때 비로소 사회친화적 공동가치가 창출된다는 설명이다. 아르코디아 교수는 “선행연구를 종합해보면, 비즈니스 거래, 무역효과에 중점을 두는 B2B 전시회도 앞으로 지식교류와 가치생산을 위한 상호작용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서 기능해야 한다는 제안점을 도출할 수 있다”면서 “사회문화적 효과 관리의 핵심은 공동의 가치와 개인의 가치가 맞물리는 지점을 찾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동가치생산 모델과 측정 속성(자료: Ranjan & Read, 2016)

이번 교과서에는 기업행사를 겨냥한 지속가능한 실천방안도 다루어졌다. 아르코디아 교수는 “기업행사는 MICE산업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라며 “수백만 건의 기업행사들이 지속가능한 행사개최 전략을 따른다면 상당한 CSR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필진은 일본 제조업의 대표주자 히타치그룹(Hitachi Group)을 CSR 우수사례로 꼽으며, 해당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세밀하고 체계적인 CSR 시스템을 참고하여 기업 전반에 지속가능성 실천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히타치 그룹은 명확한 기업윤리와 행동강령으로 임직원 개개인이 히타치 소속 기업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CSR에 대한 내부체계가 탄탄하다보니 히타치그룹에서 개최하는 기업행사도 자연스럽게 자체 이니셔티브를 따를 수밖에 없다. 필진들은 “히타치그룹이 행사를 준비할 때 항상 국가와 지역 커뮤니티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며 “이들의 실천지침은 사실상 MICE 분야 많은 기관들이 앞다퉈 내놓고 있는 친환경 MICE 행사 실천방안과 높은 유사성을 지닌다”고 말했다.

자료: Application of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아르코디아 교수의 서적 속 내용들은 어딘가 매우 익숙한 것들이다. 국내 MICE산업의 발전을 외치며 10여 년 넘게 논의되어 왔던 내용들이 여전히 교과서에 담겨있다. 물론, 사례와 실천전략, 트렌드 등 크고 작은 변화로 더 세세한 터치가 가미된 부분도 있으나, 거시적으로 보면 변화를 제언하는 방향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르코디아 교수의 교과서는 두 가지 시사점을 안겨준다. 격동의 변화기 속에서도 핵심과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렇기에 난국일수록 한 번쯤 원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MICE산업의 가치탐색과 지속가능성 등을 중심에 두고 오늘날 많은 국가들이 실천지침과 표준수립에 혈안이 되어 있다. 덴마크와 같이 6년의 시간을 투자하여 근본부터 차근차근 시스템을 쌓아가는 곳이 있는가 하면, 당장의 미봉책 마련에 그치는 곳도 분명 있을 것이다. 과연 우리는 어떤 사례에 가까운지 고민해봐야 하는 시점이다. 
지면의 한계로 인하여 본 고에서는 많은 내용을 축약하여 다루었지만, 아르코디아 교수의 교과서는 원론서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방향을 찾는 MICE 전문가를 위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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