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의 글로벌화는 많은 기획자들의 목표 중 하나다. 시장과 비즈니스 규모를 더 넓히고 참가자들에게는 더 나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행사의 글로벌화를 추진한 사례가 등장해 업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예쁜꼬마선충(C.elegans) 컨퍼런스가 그것이다.
예쁜꼬마선충학술대회는 그간 미국에서만 학술행사를 개최해왔으나, 지난해 스코틀랜드 글래스고(Glasgow)에서 24번째 행사를 열었다. 해외에서 처음 개최되는 행사였기에 학회의 컨퍼런스기획팀이 대비해야 하는 것도 상당했다고 한다. 준비기간만 수년이 소요되었던 국내학술대회의 세계화는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해외 참가자 접근성 높이기 위해 글로벌화 추진”
예쁜꼬마선충학술대회는 1975년 처음 개최되어 위스콘신대학교(University of Wisconsin)에서 2년 간격으로 치러졌다. 2001년부터는 캘리포니아대학교(University of California)로 개최 장소를 옮기기도 하였으나, 미국이라는 무대는 고수했다. 해당 학회는 미국유전학회(Genetics Society of America, 이하 GSA)의 후원을 받아 학부생부터 노벨 수상자까지 생물학 분야에 관심이 있는 모든 학자들이 참여한다. 분자생물학과 유전정보학, 조직생물학 등 여러 학문의 관점으로 예쁜꼬마선충을 분석하여 수백개가 넘는 발표가 진행된다. 부대행사로 연사들과의 워크숍 프로그램, 포스터 발표, 교류 행사와 예쁜꼬마선충을 주제로 하는 미술전시회 등이 이어진다.
매년 참가자 수는 1,000여 명에 이르며 그중 해외 참가자는 30%를 차지한다. 높아지는 인기에 2010년대 말, 학회의 컨퍼런스기획팀은 해외 참가자들의 위해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 컨퍼런스를 개최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이렇게 해외 플래그십 컨퍼런스가 첫발을 뗄 수 있게 됐다. 유럽에서 학회를 개최한다면 해외 참가자들의 여비를 줄여줄 뿐만 아니라 이동 시간도 줄어들어 해외 참가자들의 접근성을 높여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리하여 2023년 6월, 제24회 국제예쁜꼬마선충컨퍼런스(24th International C.elegans Conference)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 위치한 스코티시이벤트캠퍼스(Scottish Event Campus, 이하 SEC) 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되었다.
지속적 협력으로 이뤄낸 예쁜꼬마선충학술대회의 해외 진출
글래스고에서 열린 지난해 컨퍼런스는 대규모 컨벤션센터에서 진행되었다. 첫 해외 진출의 불확실성을 과감하게 감수하고 오히려 규모를 키워 컨퍼런스를 개최한 것이다. 성황리에 첫 해회 학술대회를 개최할 수 있었던 비결로 예쁜꼬마선충 학회기획팀은 SEC팀과의 지속적 협력 덕분이라고 말한다. “해외로의 진출은 단순한 비즈니스 거래가 아니라 상호 이익이 되는 관계를 구축하는 것에 달려있다”는 학회기획팀의 조언은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또한, 학회 내에 해외 행사 개최 경험을 가진 인력이 있던 것도 결정적 요인이 됐다. 미국유전학회 행사기획팀의 컨퍼런스 기획총괄자 앤 매리 머호니(Anne Marie Mahoney)가 그 주인공이다. 학회기획팀은 그를 주축으로 새로운 컨퍼런스 장소를 물색하며 개최준비에 착수했다. 머호니 팀장은 “예쁜꼬마선충 학회가 오랫동안 미국에서만 진행되었기 때문에 해외 개최가 쉽지 않으리라고 예상했다”며 “기획을 시작할 때부터 복잡한 이해관계를 고려하여 강력한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참가자의 다양성을 확보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스코티시이벤트캠퍼스 역시 예쁜꼬마선충 학회를 유치하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SEC의 세일즈팀 선임 매니저인 제니퍼 로디(Jennifer Roddie)는 미국유전학회와 협상을 추진하며 최종 계약을 체결했다. 로디 선임매니저는 “미국유전학회와 장기적 협업 관계를 맺고 완벽한 비즈니스 협업 사례를 남기고 싶었다”며 “우리 협업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안전상의 이유로) 개최 날짜를 재조율하는 것이었으며, 학회의 예산을 초과하지 않는 선에서 베뉴의 실행전략을 제시하고 회의 규모를 조정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학술대회의 해외 진출은 팬데믹 이전부터 준비되었기에 사실상 2년에 가까운 지연시간을 견뎌야 하기도 했다. 미국유전학회와 스코티시이벤트캠퍼스는 계속해서 변해가는 국제적 상황을 지켜보면서 소통관계를 유지했다. 동시에 악조건에서도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한 기반 마련과 행사 기획에 집중했다. 자유롭게 의사 나눌 수 있었던 것이 성공비결이라고 스코티시이벤트캠퍼스 관계는 강조했다.
팬데믹 극복하고 글래스고에서 새로운 장을 열다
마호니 팀장은 “팬데믹 기간 중 스코티시이벤트캠퍼스팀 뿐만 아니라 입찰 담당자부터 운영, 기술팀까지 모든 직원들의 역할을 인지시켜야 했다”며 “베뉴측에서는 지속가능성, 연회 메뉴 선정, 레거시 등 관련 자료를 끊임없이 공유했고 다른 컨퍼런스로부터 학습한 것과 자신들이 쌓아온 노하우를 공유해왔다”고 말했다. 덕분에 지난해 학술대회는 이전 대비 참가율 55% 증가한 1,400명(해외 참가자 포함)의 참가자들을 모을 수 있었다고 한다. 동시에 하이브리드 형태로 개최함으로써 300명 이상의 온라인 참가자들이 컨퍼런스에 참가할 수 있었다.
마호니 팀장은 “스코티시이벤트캠퍼스와 글래스고는 예쁜꼬마선충학술대회 유치가 지역경제활성화로 이어지기를 희망하며 우리 학회를 진심으로 환영해주었다”며 “참가자들이 도착했을 때부터 환대받는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 공항, 도시, 베뉴 주변에 브랜딩과 포스터를 부착하고 지역 공무원과 택시기사들에게 행사의 가치를 교육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국내 기반 컨퍼런스를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느 행사보다 세심한 계획과 고려가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더 중요한 요소는 ‘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예쁜꼬마선충 컨퍼런스는 신뢰를 바탕으로 데스티네이션과 주최측의 협업이 만들어낸 성공한 해외 플래그십 컨퍼런스 사례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