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학회 이슈와 대응방안
‘오픈 액세스 퍼블리싱(Open Access Publishing)’은 누구나 자유롭게 연구결과와 논문에 접근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출판모델이다. 오픈액세스 퍼블리싱의 등장으로 대중들은 다양한 연구결과와 논문에 접근하기 쉬워졌지 만, 한편으로는 엉터리 학술지와 국제학술대회가 등장하는 부작용이 생겼다.
엉터리 학술지를 기반으로 한 와셋(WASET)과 오믹스(OMICS) 등 정체를 알 수없는단체들이개최하는학회가전세계주요관광지에서매일개최되고있 다. ‘약탈적 학회(Predatory Conferences)’, 일명 ‘가짜학회’는 연구자들의 시 간과돈,평판등을악용해돈을벌기위한목적으로운영되는부실학회다.국내 에서는 2018년 MBC와 뉴스타파의 언론 보도를 기점으로 가짜학회의 존재와 심각성이 알려졌다. 이에 2018년 10월 한국연구재단은 ‘부실학술활동 예방을 위한 권고사항’을 발표하기도 했다. 글로벌 MICE 인사이트 이번 호에서는 가짜 학회 관련 실태와 대응방안에 대해 살펴보았다.
1. 가짜학회의실태와운영사례
2.오픈액세스퍼블리싱(OpenAccessPublishing)
3. 가짜학회의특징과구별기준
❶ 가짜학회의 실태와 운영사례
연구자의 논문 게재비와 학회 참가비 약탈
학회는 엄격한 심사기준을 거쳐 논문을 선정한 후 동료 학자들간에 지식을 공유하도록 하는 학문의 장이다. 그런데 참가비만 내면 제대로 된 심사과정 없이 아무나 논문을 발표하고 참가할 수 있는 학회가 있다. ‘약탈적 학회(Predatory Conferences)’, 일명 ‘가짜학회’는 연구자들의 시간과 돈, 평판 등을 이용해 상업적인 목적으로 운영되는 부실학회다. 이들 학회는 국제학술지 에 연구논문을 싣고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를 원하는 연구자들을 겨냥해 논문 게재비와 학회 참가비를 ‘약탈’하고 있다. 가짜학 회는 연구자의 학회 참가자격 심사뿐 아니라 진행 내용과 방식 등 모든 부분이 허술하고 상업적이다.
MBC와 뉴스타파는 2018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해 잠입취재를 진행했다. 취재진은 이름만 넣으면 1초 만에 온라인 상의 자료를 짜깁기하여 논문을 만들어주는 ‘사이젠(SCIGEN)’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작성한 엉터리 논문을 제출했다. 취재진은 제출 4일만에 논문이 채택됐다는 메일을 받았고, 이 논문으로 학회에서 발표까지 했다. 일인 당 500불을 지불하고 참석했던 베니스 국제학술대회는 당초 1박 2일 일정이었지만 반나절 만에 종료됐다.
국내 대학 및 연구기관의 참가횟수 1,500여건 이상
언론보도 이후 정부 조사결과 최근 5년간 대표 가짜학회 주최업체인 ‘와셋(WASET)’과 ‘오믹스(OMICS)’의 학회에 한 번이라도 참가한 국내 대학과 정부 출연 연구기관은 총 108개로 나타났다. 총 참가횟수는 1,500회가 넘는데, 한 기관에서 매년 평균 3번 꼴로 참석한 셈이다. 가짜학회 참가 연구자 수는 모두 1,300여 명으로, 이 가운데 180명은 2번 이상 참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가짜학회의 피해자지만, 일부는 정부 및 연구기관이 지원하는 연구비를 목적에 맞지 않게 이용하기 위해 고의성을 가지고 반복적으로 참가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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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가짜학회 주최기관으로 알려져있는 ‘와셋(세계과학공학기술학회, World Academy of Science, Engineering & Technology, WASET)’의 가짜학회는 2032년까지 거의 매일 개최일정이 계획되어 있다. 와셋 학회가 열리는 지역은 싱가포르, 발리, 로마, 파 리, 런던 등 전 세계 주요 관광지다. 아래 그림처럼 와셋은 관광상품을 판매하는 여행사처 럼 학회 참가를 홍보하고 있다.
와셋 웹사이트에서 각 도시별 컨퍼런스 배너를 선택하면 해당 도시에서 개최되는 학회 의 전공 분야를 선택할 수 있도록 뜬다. ‘런던 2019 컨퍼런스’를 선택하자 우주기계공 학, 수의학, 법학·정치학 등 전공 분야 대분류만 해도 50가지나 되는 목록이 나타났다. 각 전공분야 대분류를 선택하면 소분류에 해당하는 수십 가지의 학회 이름이 뜬다. 이렇다보니 왠만한 전공분야의 연구자는 누구나 참가할 수 있어 가짜학회 범죄의 대상으로 걸려든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모든 학회가 개별적으로 전문성을 갖고 열리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곳, 동일한 자리에서 진행된다는 것이다. 학회라기보 다 참가비만으로 참가자격을 획득한 각종 분야의 연구자들 이모여서로관련도없는전공과주제에대한형식적인발표 를 하는 자리에 불과하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와셋은 ‘ICCSO 2029’, ‘ICA 2029’, ‘ICMFS 2029’처럼 이름만 그럴듯한 학회를 전 영역과 분야에 걸쳐 개최하기로 하고 가능한 한 많은 수의 참가자를 모집하기 위해 홍보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개별 학회에 등록했지만, 자신이 신 청한학회의분야와주제와관련없이모든참가자들과함께하는학회에참가하게된다.
이처럼 많은 수의 가짜학회를 ‘생산’해내다보니 학회 웹사이트의 수준도 떨어진다. 웹사이트를 살펴보았을 때 발견할 수 있는 이상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와셋 학회의 웹사이트들을 확인해보면, 연구주제와 이름만 다른 수많은 학회들이 같은 곳에 서 동시에 개최될 예정으로 공시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메인 배너는 동일한 사진을 사용하고, 여기에 이름과 링크를 바꿔 독립적인 학회인 것처럼 보이도록 속임수를 쓰고 있다. 학회에 대한 설명문 역시 추상적이고 모호하며, 이마저도 학회 이 름과 단어만 조금씩 바꿔 복사와 붙여넣기를 반복해서 적어두었다. 와셋뿐만 아니라 오믹스(OMICS) 등 가짜학회를 개최하는 다른 단체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학회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오믹스 인터내셔널(OMICS International) 컨퍼런스
오믹스(OMICS)는 스리니바부 제델라(Srinibabu Gedela)가 2008년 설립한 회사로 700여 개의 온라인 저널과 3,000여 개의 컨퍼런스를 운영하고 있다. 오믹스에 따르면, 오믹스 학 술지는 동료 심사(peer review)를 거치며 저명한 학자들을 편집위원으로 두고 있다. 또 오 믹스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들은 다른 저널에서도 폭 넓게 인용되고 있을 정도로 학계의 인증을 받고 있다. 그러나 2016년 8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 FTC)는 OMICS가 부정한 방식으로 논문과 학회 참가자들을 속여 끌어들였다며 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연방거래위원회가 고소한 주요 내용은 크게 네 가지다. 우선 오믹스는 실제로 논문들에 대해 동료 심사를 하지 않았으며, 심사 평 없이 편집만 한 경우도 있었다. 또, 몇몇 저명한 학자의 명성을 이용하기 위해 본인의 동의 없이 학술지 편집위원으로 임명 하였다. 미국 국립보건원 또한 오믹스의 출판 관행이 연구 윤리를 상당히 침해할 우려가 있어 오믹스가 출판하는 어떠한 저널 도 국립보건원의 논문색인 데이터베이스인 ‘펍메드(PubMed)’에서 검색할 수 없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다수의 저자들은 오믹 스에 지불해야 하는 거액의 출판비용을 출판이 완료된 이후에야 알게 되었고, 논문 철회를 요청한 후에도 오믹스는 이를 받아 들이지 않고 무단으로 논문을 게재했다고 증언했다. 이에 따라 미국 법원은 오믹스의 사기행위를 금지하고 조치를 취하도록 절차를 진행할 것임을 예고하는 예비적 금지명령을 내렸다.
미국 법원의 명령에 따라 오믹스는 미국 내에서 더 이상 속임수를 사용한 사업 운영을 지속할 수 없게 됐다. 오믹스에 대한 미 국 연방거래위원회의 소송을 담당한 판사는 오믹스가 더 이상 학회에 실제로는 참가하지 않는 연사가 참석할 것처럼 광고하지 못하도록 제한을 가했다. 편집위원이나 동료 평가에 대한 거짓정보를 홍보와 색인과 인용횟수 과장도 금지했다. 또 출판비용 에 대해 사전에 저자들에게 공지할 것을 명령했다. 연방거래위원회는 오믹스가 이번 조치를 준수하지 않는 경우 법정모욕죄로 고발하여 피해를 입은 연구자들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오믹스의 CEO인 제델라는 이번 소송이 최근 오믹스로 인해 시장 점유율을 잃고 있는 기존의 출판계와 몇몇 오픈 액세스 저널 이 주도한 것이라 주장한다. 그는 이번 예비적 금지명령이 미국에서의 오믹스 사업 운영을 중단시키지는 못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일부 학자들도 이번 소송이 오믹스의 기만적인 행위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연구자들이 연구논문을 출판하고 학회 연사로 활동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약탈적인 학회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❷ 오픈 액세스 퍼블리싱(Open Access Publishing)
대형 출판사의 과도한 상업화로 일반 대중들이 학술 논문에 접근하기가 어려워지 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 오픈 액세스모델이 제시되었다. 오픈 액세스 모델(Open Access, 이하 OA)이란, 비용 부담과 접근장벽 없이 누구나 연구성과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출판 모델이다. OA 저장소에 아카이빙된 정보와 연구결과에는 법 적,경제적,기술적장벽없이누구나무료로접근하고활용할수있다. OA는크게 ‘골드 OA’와 ‘그린 OA’로 나뉜다. 골드 OA는 학술지 출판사가 모든 논문을 무료로 게재하는 방식의 OA 모델 학술지를 의미하 며 자체적인 동료 평가(Peer Review)가 진행된다. 필요한 경우, 논문 저자나 기관은 출판 수수료(Article Processing Charge, 이하 APC)를 지불한다. 그린 OA는 저자가 논문을 직접 지정된 OA 저장소(Open Access Repository)에 아카이빙(저장)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그린 OA는 별도로 동료 평가를 진행하지 않으며, 대개 다른 곳에서 이미 동료 평가가 완료된 논문을 OA 저 장소에업로드하는방식이다. 하이브리드OA도등장했는데,출판및구독을기본으로하는유명학술지가경우에따라추가 로 APC를 받고 오픈 액세스 학술지에도 논문을 공개하는 방식이다. 즉, 출판된 논문들 중 일부는 오픈액세스의 형태로도 제공되는 것이다. 기존 출판 방식과 오픈 액세스 방식을 접목했다고 해서 하이브리드 OA라고 불린다. 하이브리드 저널은 오픈 액세 스출판옵션을선택한논문저자들에만논문출판비가부가되고,오픈액세스출판옵션을선택하지않은논문들은보안이유 지되어 학술지 유료가입자들만 접근할 수 있다. 오픈액세스 옵션의 내용은 논문의 저자가, 나머지 내용은 논문의 독자들이 비 용을 부담하는 시스템이다.
논문 접근에 과도한 비용을 청구하는 등 폐쇄적으로 운영되던 과거의 학술지 출판 방식과 달리 더 많은 대중이 연구결과에 접 근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OA의 등장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OA 모델이 확산되고 학술지 출판과 논문 게재가 용이해지면 서 부실한 학술지들이 등장하게 됐다. 골드 OA의 경우에는 동료 평가 진행이 원칙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동료 평가를 아예 진 행하지 않거나 대학원생들을 동원해 수준 미달의 평가를 진행하는 학회지들이 적발됐다. 이들은 또 가짜 에디터 그룹을 두거 나 레프리(referee) 제도를 악용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오픈 액세스 방식을 차용하면서도 논문 게재 허가비용과 게재비용까지 청구하는 상업적인 학회지도 등장했다. 논문의 저자에게 출판비를 받고 해당 논문은 온라인으로 개방하는 새로운 출판모델인 APC가 도입되면서 이 모델을 악용하는 사례가 등장한 것이다. 이처럼 초기 진출한 OA기반 APCs방식 출판사들의 성공에 자 극을 받아 인도, 아프리카 등에서 후발 주자들이 많이 생겨났고, 이는 필연적으로 부실로 이어졌다. 이렇게 영리적인 목적으로 운영되는 학회지들의 또 다른 비즈니스 모델이 바로 가짜학회다. 가짜학회들은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고 학회에 참가하여 연 구결과를 발표하길 원하는 연구자들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여 돈을 챙긴다.
❸ 가짜학회의 특징과 구별 기준
한국연구재단 ‘부실학술활동 예방을 위한 권고사항’
2018년 10월 한국연구재단은 ‘부실학술활동 예방을 위한 권고사항’을 발표하였다. 연구책임자나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지원과제 연구결과물을 논문으로 발표할 때 관련 학계가 신뢰할 수 있는 건전한 학술지나 학회에 발표하도록 안내하기 위해서 다.여기서말하는‘건전한학술지또는학회’는관련학계가인정할수있는절차와
방식에 따라 발표할 연구논문이 채택되는 학술지 또는 학회를 의미한다. 반면 ‘부실하거나 약탈적인 학술지 또는 학회’란 관련 학계가 인정하기 어려운 절차에 따라 연구논문 발표가 채택되는 학술지 또는 학회를 의미한다. 한국연구재단은 가짜학회와 관 련된 주요 논문들을 참고하여 권고사항과 함께 가짜학회와 학술지의 세부적인 특징과 구별기준을 제공하였다.
Think. Check. Attend 운동
연구와 출판계의 혁신과 발전을 지지하는 조직인 Knowledge E는 올바른 학회 참가를 지지하는‘Think. Check. Attend’ 운동을 시작했다. 이 캠페인 은 학회 참가에 앞서 3단계를 거쳐 심사숙고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우선 약탈적이거나 부실한 학회가 가지는 문제점에 대해 ‘생각’하고, 올바른 학 회 판단기준에 맞춰 참석예정인 학회를 ‘확인’하고, 여기에 부합한 학회에 만 ‘참석’하도록 한다. 이 캠페인 또한 올바른 학술지와 학회 판단 기준을 제공하고 있어, 연구자를 비롯한 학회 참가자들이 학 회의 정당성과 신뢰도를 판단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Think. Check. Attend는 웹사이트를 통해 올바른 학회 선정을 위한 체크리스트 툴을 제공하고 있어 간편하게 참가학회를 진단 가능하다. 또한 판단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에는 웹사이트 관 리자에 문의하여 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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