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으로 41회째를 맞이한 다보스포럼이 지난 1월 26일 스위스의 다보스 내 위치한 스키 리조트에서 화려한 막을 열었다. 1월 30일까지 진행된 이번 행사에서 유럽의 금융위기가 주요 세계 현안으로 떠오름에 따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메르켈 독일 총리를 필두로 35개국 정상과 100개국 주요기업 CEO 등 총 2,500명이 참석하여 250여 개의 세션에서 활발한 토의를 진행하였다.
이번 포럼에서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하여, 파스칼 라미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참석하여 국제적인 주요 사안들에 대해 기조연설을 진행하였다.
본 지에서는 ‘다보스포럼’ 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친숙한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World Economic Forum Annual Meeting)’의 최초 개최에서부터 오늘의 성공에 이르기까지 지난 40년간의 성장과정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조명해보고자 한다.
※ 본 기사에 사용된 모든 내용 및 이미지는 세계경제포럼(WEF) 재단의 사용 허가 승인을 받은 것으로 본 연구원의 허가 없이 무단으로 사용이 불가함을 알려드립니다.
1. 세계경제포럼 지난 40년간의 성장의 기록
1971년 1월, 제네바 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이던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은 유럽의 주요 경제현안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공동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유럽의 주요 기업인들을 스위스 다보스로 초청하여 ‘제1회 유럽경영심포지엄(European Management Symposium)’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였다. 이 행사의 성공적 개최로 발생한 수익금을 재원으로 하여 슈밥은 비영리단체인 유럽경영포럼(European Management Forum, EMF) 재단을 출범시켰다.
이렇게 시작된 다보스포럼은 1987년 유럽경영포럼 재단이 명칭을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으로 변경한 후, 행사명칭도 ‘유럽경영심포지엄’에서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World Economic Forum Annual Meeting)’로 변경하고 행사규모도 확대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다보스포럼’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널리 알려진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에는 그 후 수많은 기업과 정부, 사회단체의 수장들이 모여 주요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대안을 찾기 위한 협의를 시작하였다.
또한 연차총회에서는 동서간의 이해를 조율하고, 중국과 인도 등 신흥 경제국에 대한 소개, 정보기술에서부터 세계안보, 건축에서 사회공헌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안에 대한 최신 트렌드와 전망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처럼 오늘날 전 세계의 주요 경제적 현안을 다루는 국제적인 행사로 발돋움한 다보스포럼의 지난 40년간(1971년-2010년)의 성장 및 발전과정에 대해 살펴보자.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 (World Economic Forum Annual Meeting)란?
‘다보스포럼’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널리 알려진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는 세계 각국의 정·관·재계 수뇌들이 모여 각종 정보를 교환하고, 세계 경제의 발전방안 등에 대해 논의하는 국제적인 민간회의이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국제회의들이 국가(정부)나 국제 협회에 의해 개최되는 것과 달리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일명 다보스포럼)’는 1971년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에 의해 설립된 비영리 민간기구인 ‘세계경제포럼 재단’에 의해 개최, 운영되고 있다.
매년 1월 말, 스위스 휴양 도시 다보스의 스위스 스키 리조트(Swiss Ski Resort)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에는 초청인사 외에 포럼 재단의 법인 회원에게만 참가 자격이 주어지는데, 현재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1,200개 이상의 기업체와 단체가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으며, 국내에서는 SK그룹과 현대차그룹, 한화그룹 등이 회원으로 가입하여 적극적인 포럼 참가활동을 하고 있다. 다보스에서 매년 1월 열리는 연차총회 외에 최근에는 중국에서 하계 다보스포럼(Summer Davos)이 개최되고 있으며, 미국(WEF USA), 중국(WEF China), 일본(WEF Japan) 등 주요 국가에 지부를 설치하여 해당 지역 회원과 파트너사의 활동을 지원하는 등 점차 포럼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1971년 제네바 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이던 슈밥(Schwab)은 스스로 모든 재무적 비용과 위험부담을안고 자금을 확보하여 1월 24일부터 2월 7일까지 다보스에서 ‘제1차 유럽경영심포지엄(EuropeanManagement Symposium, EMS)’을 개최하였다. 이 행사에서는 “미래의 도전(The Challenge of the Future)”과 “기업전략과 구조(Corporate Strategy and Structure)”라는 두 가지 주제에 대해 논의하였으며, 31개국에서 450명의 참석자와 50명의 교수 및 언론 대표가 참석하였다.
제1회 유럽경영심포지엄이 개최될당시 세계는 기술적, 정치적, 사회경제적으로 격변의 시기였는데, 인류가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하였고,베트남 전쟁으로 냉전이 심화되면서 미국의 역할에 대한 의문이 발생하였으며, 중동지역 갈등으로 세계안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오일쇼크로 경제위기가 발생하는 등 다양하고 복잡한 세계적 이슈가대두되었다.
이렇듯 격변하는 세계정세에 대응하기 위해 슈밥은 기업의 경영진은 물론 주주와 채권자,직원, 고객, 공급자, 사회와 정부 등 조직에 관련된 모든 이해관계자가 기업이 직면한 과제에 대해 함께논의해야할 필요성을 깨달았다. 이에 슈밥은 참가자들이 우호적이고 호젓함을 느낄 수 있는 편안한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접근성이 좋은 휴양도시인 다보스를 개최지로 선정하였다.
다보스의 리조트는 참가자가 편안한 분위기와 비공식적인 공간에서 논의를 할 수 있도록배려함으로써 보다 높은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유럽경영심포지엄의 초대 의장은하버드대학교 비즈니스스쿨의 학과장이었던 조지 베이커(George Baker)였는데, 슈밥이하버드대학교에서 공공정책 과정을 이수하던 시절 맺은 인연으로 의장직을 맡게 되었다. 또한 슈밥은세계적인 경제석학인 갤브레이스(Galbraith), 공공정책 해설자 허먼 칸(Herman Kahn), IBM 회장 자크메종후즈(Jacques G. Maisonrouge) 등을 초청하여 성공리에 ‘제1회 유럽경영심포지엄(EMS)’을개최하였다.
이 행사의 성공으로 슈밥은 2만5천 스위스프랑(한화 약 210만원 /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3천4백만원)1)을 수익금으로 회수하였으며, 행사 종료 후 이 자금을 바탕으로 스위스 연방정부(SwissConfederation)의 감독 하에 1971년 ‘유럽경영포럼(The European Management Forum, EMF)’을 다보스(Davos)가 위치한 산악지역인 그라우뷘덴(Graubunden)의 주도(州都) 쿠르(Chur)에 재단 형태로설립하였다. 유럽경영포럼 재단은 설립당시부터 다보스 정신(Davos Spirit)으로 알려져 있는 이해관계자이론(Stakeholder Theory)2)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기업의 소유주, 주주, 고객, 공급자, 협력사와 정부,사회 등 기업을 둘러싼 모든 이해관계자들을 고려하여 포럼 행사를 구성, 운영하고 있다.
1) 1971년 평균환율 (1CHF=84.69원)적용하여 원화 변환, 현재가치 변환 시 물가상승률 16.368 적용
2) 이해관계자 이론(Stakeholder Theory): 1984년 프리만 에드워드(Freeman R. Edward)가 처음 주창한 조직의 성과와 효과성 평가방법에 대한 이론으로 기업은 주주의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주 접근법(Shareholder approach)에서 주주뿐만 아니라 기업을 둘러싼 사회-정치적(socio-political) 이해관계자(stakeholder) 또한 신경써야 한다는 이해관계자 접근법(Stakeholder approach)을 도입하였다.
1975년은 유럽경영포럼(EMF) 재단이 개최하는 유럽경영심포지엄(EMS)의 참석자가 로열더치셸(Royal Dutch Shell) 회장, 유니레버와 필립스(Unilever and Philips) 대표 등을 포함하여 860명으로증가한 약진의 해였다. 또한 당해 포럼이 시작된 이래 최초로 비유럽 지역인 멕시코의 산업장관이참가하였으며, 국가간 산업 협력을 이끌어 산업 발전을 가속시키기 위한 유엔(UN) 산하 특별기구인국제연합공업개발기구(United Nations Industrial Development Organization, UNIDO)가유럽경영심포지엄의 공식협력기구로 선정되는 등 심포지엄이 국제적인 행사로 성장하는 발판을마련하였다. 더불어, 포럼은 최초로 학술 안내서를 발간하여 유럽경영포럼 재단을 소개하고 유럽 산업을 이끄는 의사결정자들을 위한 전략을 제공함을 알렸다.
1971년 개최 이후 5년만인 1975년에 유럽경영포럼 재단이 개최하는 유럽경영심포지엄은 세계적인 선도기업과 정부의 참여를 이끌어 내어 기업은 물론 정부, 민간단체와 기타 이해관계자(stakeholder)가 화합하고 협력하여 경제현안을 풀어나가는 ‘매우 가치있는 플랫폼(platform)’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또한, 재단 설립 초기부터 슈밥에 의해 선정된 “이해관계자 이론” 역시 세계적으로 널리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포럼 창설 이후 5년간 포럼을 세계적인 행사로 성장시키고도 슈밥의 나이는 37세에 불과하였다.
1976년 10월 유럽경영포럼 재단은 아랍과 서구권의 교류를 위해 스위스 몽트뢰(Montreux)에서3일간 ‘제1회 아랍-유럽산업협력심포지엄(Arab-European Business Cooperation Symposium)’을 개최하였고, 이후 유럽경영포럼 재단이 개최하는 국제적 차원의 행사가 점차 증가하였다. 이러한 포럼 재단 활동의 영향으로 1977년 개최된 ‘제7회 유럽경영심포지엄(EMS)’에서는 미국과 일본의 정치가와 기업가가 참가하는 등 총 50개국에서 참가하였으며, 이에 유럽경영포럼 재단은 참가기업의 소속감과 친밀감 조성을 위해 심포지엄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71개의 기업을 회원으로 선정, 발표함으로써 최초의 ‘다보스 클럽(Davos Club)’을 구성하였다. 또한 국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OECD)가 공식 후원기관으로 등록함으로써 유럽경영심포지엄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1977년 개최된 ‘제7회 유럽경영심포지엄’의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으로는 과거 소비에트의 반체제인사로 12년간 옥살이를 했던 작가이자 운동가인 블라디미르 부코프스키(Vladimir Bukovsky)의 등장이었는데, 그는 수갑을 찬 채로 스위스에 입국한 후 바로 다보스로 이동하여 그의 첫 번째 공식 연설을 진행하였다. 또한, 처음으로 유럽을 벗어나 워싱턴 DC에서 회담3)을 가졌으며, 전년도에 진행된 ‘아랍-유럽산업 협력심포지엄’의 성공에 힘입어 ‘남미-유럽산업협력심포지엄(Latin America-European Business Cooperation Symposium)’을 개최하였다. 한편, 언론과의 관계 구축을 위해 당시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독일의 주요 언론매체 연합인 유로파(EUROPA)와 협력관계를 구축하였다.
3) 미국 대통령이 제럴드 포드에서 지미 카터로 바뀌면서 정권 교체에 따른 영향을 논의하는 라운드테이블(round table) 형태의 회담이었음.
1987년 유럽경영포럼(EMF) 재단은 비유럽국가의 회원 수가 증가하고, 전 세계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확대됨에 따라 재단명칭을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으로 변경하였고, 이에 따라 ‘유럽경영심포지엄(European Management Symposium)’이던 행사 명칭을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World Economic Forum Annual Meeting)’로 바꾸고 세계 경제와 금융시스템, 시장변동에 따른 기업경영 등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슈밥은 명칭을 처음 바꾼 1987년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 개회사에서 ‘유연성(Flexibility)’, ‘이니셔티브(Initiative)’, ‘터프니스(Toughness)’를 포럼 활동의 핵심으로 내세우며 글로벌 커뮤니티(Global Community)로서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포럼이 성장하고 연차총회의 참석자가 늘어남에 따라 1982년부터 연차총회 기간에 진행되던 ‘세계경제지도자 비공식모임(Informal Gathering of World Economic Leaders, IGWEL)’의 참가자도 국제기구 관계자 및 정부 인사 등을 포함하여 50인 이상으로 증가하였다.
세계경제포럼 재단은 1987년 연차회의에 ‘산업별 회담(Industry Summit)’을 확대·개최하였는데, 식음료 부문에서부터 자동차, 에너지, 엔지니어링, 건축, 건강, 정보기술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포함하게 되었다. 또한 ‘월드링크(World Link)’라는 매거진을 창간하여 세계 주요 의사결정자 33,333명에게 배포하였다. 월드링크는 창간 후 2년 동안은 매월 발간되다가 이후 격월간으로 발간되었으며, 2003년부터는 연간 간행물인 ‘글로벌 아젠다(Global Agenda)’로 대체되어 3년간 발행되었다.
한편, 다보스포럼은 최신 기술을 도입하여 참가자간의 교류를 지원해 왔는데, 1987년에는 콩그레스 센터(Congress Centre)에 비디오폰을 설치하여 화상통화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현재는 더욱 발전하여 참가자들이 연차총회에 대한 최신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키오스크를 설치·운영하고 있으며, 참가자의 인터넷 접속은 물론, 참가자가 다른 참가자에게 메시지를 발송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1998년 11월 1일, 세계경제포럼은 새로운 빌딩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1970-71년 포럼의 첫번째 사무실은 30㎡ 규모의 창고 같은 공간이었다. 1973년 제네바의 작은 사무실로 옮겼을 때 포럼 재단에는 단 4명의 직원만이 근무하고 있었으나, 1998년까지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73명의 정규직과 26명의 계약직을 고용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이에 1990년대 초 슈밥은 콜로그니(Cologny)에 보다 큰 규모의 사무실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성사시키지 못하다가, 몇 년 후 제네바 정부의 도움으로 적당한 가격에 사무실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고, 슈밥의 아내인 힐데(Hilde)가 건물 건축을 전담하여 3층 높이의 빌딩을 건립하였다.
같은 해 초에 열린 다보스포럼의 ‘세계경제지도자 비공식모임(IGWEL)’에서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등 총 20개국으로 이루어진 기구의 설립에 대한 의제가 도출되었고, 그 결과 1998년 독일의 본(Bonn)에서 최초의 회담이 이루어졌다. 이는 기존에 진행되던 G8에 영향을 미쳐 2008년 미국의 워싱턴 DC에서 최초의 ‘G20 정상회담’이 진행되었다. G20 정상회담은 2010년 서울에서 진행되어 국내에도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 모태는 결국 다보스포럼에서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1998년 행사에 참가한 대표적인 연설자로는 당시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의 영부인이던 힐러리 클린턴으로, 그녀는 다중이해관계자 이론에 대해 심도 깊게 연설하였다. 또한 기존의 10개로 세분화된 산업군을 16개로 확대 편성하는 등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갔다.
21세기로의 전환을 맞은 2000년은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가 30주년을 맞이하는 등 여러 가지로 특별한 해였다. 이 해의 참석자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글로벌 정치 및 경제 분야의 고위층들이 다수 참가하였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는 사상 처음 미국의 수많은 고위급 정치인, 기업가와 함께 참석하였으며, 영국의 블레어 총리도 회담을 위해 참석하였다. 또한 그동안 이어진 정·재계 주요 인사뿐 아니라 세계적인 민간단체와 NGO가 참석하여 그들의 주요 현안에 대해 논의함으로써 한층 성숙한 회담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또한, 세계경제포럼 재단은 정부의 파트너 역할을 자처하면서 세계정책을 후원하기로 하였는데, 그 일환으로 정보통신기술(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 ITC) 분야 100개 기업이 참여하는 정보격차대책위원회(Digital Divide Initiative)가 설립되었다. 같은 해 슈밥과 정보통신기술 기업의 대표들은 일본에서 열리는 G8 정상회담에 초청받아 선진국과 신흥국의 정보격차에 대해 논하기도 하였다.
2000년에 개최된 다보스포럼은 다시금 환경적 이슈가 크게 부각되면서 처음으로 탄소중립적인(Carbon neutral) 행사로 개최되었다. 이를 위해 세계경제포럼 재단은 관광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프로그램인 ‘녹색지구 21(Green Globe 21)’에 가입하여 다보스포럼에서 배출한 온실가스에 대한 보상으로 멕시코에 나무를 심었다. 이처럼 지난 30년간의 발전을 통해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는 그 명칭만으로도 다보스포럼의 협력 정신과 포럼의 다른 활동들을 떠오르게 한다. 그 결과 많은 연구단체와 기관에서 다보스포럼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심지어 일부는 연차총회의 프로그램 등을 그대로 모방하거나 다보스의 명성을 도용하기도 한다.
2004년 다보스포럼의 주요 이슈는 서비스의 가치를 향상시키고 산업간 연계를 강화시키기 위한 산업 파트너십 프로그램의 구축이었다. 이를 위해 포럼 운영 초기에 정보통신기술, 에너지, 금융서비스
3가지 분야에 대한 프로그램에서 시작해 2009년까지 총 18개 분야로 확장하여 지원과 협력을 강화해나가고 있다.
한편, 2004년 1월 슈밥은 그의 사회적 공헌을 치하하는 의미로 댄 데이비드 상(Dan David Prize)을 받았는데, 이 때 받은 상금 1백만 달러로 미래인재 양성을 위한 ‘젊은지도자포럼(The Forum of Young Global Leaders, YGL)’을 창설하였다. 이 포럼은 40세 이하의 활동적인 리더를 선정하여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함으로써 글로벌화 시대에 요구되는 새로운 아이디어 창출, 첨단지식의 도입 등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최초의 YGL 멤버로는 8,000명의 지원자 중에서 69개국 238명이 선정되었는데, 이중 30%가 여성이었다. YGL은 꾸준히 성장하여 2007년에는 전 세계 100개 기업의 후원으로 기아와 질병 퇴치를 위한 식량지원과 지구사랑 캠페인을 통해 탄소배출량 감소 정책을 추진하는 등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YGL은 창설 당시부터 스스로 규정하고 조직하는 커뮤니티로 참가자들의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자발적으로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회의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실행에 옮김으로써 자생적으로 성장하였다. 특히 YGL 멤버들은 세계경제포럼 재단과 하버드대학교의 후원아래 진행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이벤트를 통해 세계 정책과 정세에 대한 지식을 습득함으로써 다보스포럼의 주요 목표인 사회적 기업가 정신의 전파에서부터 기아 아동의 교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YGL은 ‘할 수 있다(can-do)’는 접근법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사회적 기업에 대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회의장에서 벗어나 사회적 기업이나 시민단체 등을 직접 방문하여 그들과 함께 논의하고 교류함으로써 보다 적극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2009년 YGL의 활동 멤버들은 650명으로 증가하였으며, 그들의 시간과 에너지를 커뮤니티 유지와 발전에 쏟고 있다.
2007년 9월 중국 대련에서 하계 다보스포럼(Summer Davos)이 ‘새로운 챔피언을 위한 연차총회(Annual Meeting of New Champions)’라는 이름으로 최초로 개최되었다. 본 행사에는 세계경제포럼재단의 회원 중 글로벌성장기업(Global Growth Companies, GGC) 회원을 포함하여 젊은지도자(YoungGlobal Leaders, YGL), 기술선도기업(Technology Pioneers) 회원들을 중심으로 총 90개국에서 약 1,700명의 정부 및 시민단체 지도자들이 참석하였다. 특히 전체 회원의 40% 이상이 아시아계인글로벌성장기업 회원 중에서 125개의 기업이 참석하였다. 하계다보스포럼의 개회를 맡은 중국의원자바오 총리는 전 세계가 중국 경제의 발전과 중국-세계경제포럼 재단간의 협력관계에 대해 높은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정·재계 주요 인사, 전문가, 학계의 참여로 본 포럼이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있다고 하였다.
한편, 하계 다보스포럼에 참가한 YGL 회원들은 자신의 직장에서 건강한 식사를유도하고 ‘비만과 기아’라는 서로 상반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장에서 식사를 할 때마다 0.2달러를개발도상국의 학교급식을 위한 재원으로 기부하는 ‘두 명을 위한 식탁(Table for Two)’ 프로그램을시작하였다. 이를 위해 세계경제포럼 재단과 세계보건기구도 회의에 참여하여 효과적인 직장 내건강프로그램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2007년에는 그동안 진행되어오던 지역별 미팅들이 더욱 확대·개최되었는데, 지역별로 주요 현안에대한 해결방안 도출을 위해 다양한 논의들이 진행되었으며, YGL 등 세부 커뮤니티별 행사도확대되었다. 또한 세계경제포럼 재단은 여러 가지 글로벌 이슈에 대한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을 모아‘글로벌아젠다협의회(Global Agenda Council)’를 출범시켰고 이는 세계 Top 25개 학술기관의 수장들이모인 ‘국제대학교육지도자포럼(Global University Leaders Forum, GULF)’을 구성함으로써 완성되었다.
다보스포럼, 지난 40년간의 발전지표
다보스포럼의 시초, 유럽경영포럼(EMF)의 탄생 (The First Year)** 4)
■ 1971년 1월 유럽의 주요 기업인을 스위스 다보스에 초청하여 개최한 제1회 유럽경영심포지엄의 성공적 개최를 통해 획득한 수익금을 기반으로 비영리단체인 유럽경영포럼 재단을 출범하였다.
하나의 아이디어로 성공한 다보스포럼 (The Triumph of an Idea)
■ 1971년 8월 미국의 경기부양과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닉슨 대통령이 국제통화제도와 고정환율제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금융시장의 활력을 위해 미국달러와 금의 교환을 정지하는 달러방어 정책을 도입함으로써 전 세계에 ‘닉슨쇼크’가 발발하였다. 이러한 환경적 변화에 따른 공동대응 마련의 필요에도 불구하고 첫 회에 비해 줄어든 300명이 참석하였다.
■ 첫 회에 비해 규모는 줄었지만 높은 참가자 수준과 회의 참석자의 만족도로 인해 언론으로부터 “아이디어의 성공(Triumph of an idea)”으로 평가받았다.
참가자의 직접 참여로 완성된 다보스 선언문 (The Davos manifesto)
■ 슈밥의 이해관계자이론을 바탕으로 한 윤리강령이 참가자의 자발적 참여로 구성되었고, 이는 이후 ‘다보스 선언문(The Davos Manifesto)’으로 발전하여 포럼의 구성과 운영의 기본 방침으로 활용되었다.
경기불황 속에서 다보스의 역할 (In the Midst of Recession)
■ 1974년과 75년 오일사태로 세계는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받았고 이로 인해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가 세계적 이슈로 대두되면서 유럽경영심포지엄에서도 환경적 이슈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국제적 행사로 성장하는 다보스포럼 (Davos Goes Global)**
■ 유럽경영심포지엄 개최 이래 최초로 비 유럽국가인 멕시코의 산업장관이 참가하고, 유엔산하 기구가 공식협력기구로 선정되는 등 국제적 행사로의 성장 기틀을 마련하였다.
4) ** 표시가 있는 년도의 보다 세부적인 내용은 앞선 주요년도별 기록에서 설명하고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아랍과 서구권의 가교 (Bridging the Arab World and the West)
■ 1976년 10월 중동과 유럽지역을 대표하는 기관 관계자 1,500여명이 참석한 제 1회 아랍-유럽산업협력심포 지엄이 개최되었다.
다보스클럽의 형성 (The Davos Club)**
■ 1977년 유럽경영심포지엄에 미국과 일본 등 비유럽국가의 참여가 증가함에 따라, 참가자간의 유대감 강화 및 서비스 증진을 위해 정기적인 참가기업 71개사를 회원으로 선정하여 ‘다보스클럽’ 구성하였다.
비극적 사건 발생 및 안보강화 (Tragedy and Security)
■ 1978년 포럼의 의장으로 선출되었던 독일의 기업가 한스 마틴 쉴라이어(Hanns-Martin Schleyer)가 극좌파 테러리스트 그룹인 독일적군파(Red Army Faction)에 납치,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함으로써 한층 안보가 강화되었다.
중국 대표단의 다보스포럼 최초 참가 (Opening the Door to China)
■ 중국의 새로운 경제정책 재편에 따라 중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중국의 지도자 등소평이 대표단과 함께 최초로 다보스포럼에 참가하였다. 이후 슈밥은 중국 정부 초청으로 20명의 주요 기업인과 함께 중국을 방문하여 중국기업경영협회(China Enterprise Management Association)와 MOU를 체결하였다.
■ 유럽경쟁력보고서(European Competitiveness Report)가 최초로 발간되었다.
다보스포럼의 변화. 기념 그리고 경쟁력 (Change, Celebration and Competitiveness)
■ 유럽경영포럼 재단 설립 10주년을 맞은 1980년, 포럼 회원 수는 300명으로 증가하였으며, 유럽뿐만 아니라 비유럽국가의 기업도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 일본, 미국, 캐나다 등 외부 지역에 대한 분석이 포함된 유럽경쟁력보고서(European Competitiveness Report) 2호가 발간되었다.
세계 경제 혁신기업의 발굴 (In Search of Pioneering Enterprises)
■ 유럽경영포럼 재단의 활동범위를 확장하기 위해 3가지 혁신과제가 제시되었다.
① 소규모의 비공식적이고 편안한 회담 제공 (첫 소규모 회담으로 은행 관계자들의 환율 문제에 대한 토의 진행)
② 베이징에서 중국내 최초 포럼인 중국-유럽산업지도자심포지엄(China-Europe Business Leaders Symposium) 개최
③ 빠르게 성장하는 혁신적인 중소기업의 회원 영입을 위해 유럽 내 100대 혁신 기업(Pioneering Enterprises) 선정 및 발표
최초의 세계경제지도자 비공식모임 개최 (The First IGWEL)
■ 참가자 간의 보다 원활한 의견 교환과 친목을 위해 ‘세계경제지도자 비공식모임(IGWEL)’이 최초로 개최되었다.
다보스 정신 (The Spirit of Davos)
■ 1983년 개최된 유럽경영심포지엄에는 52개국에서 500명의 기업가, 100명의 정치인, 100명의 기자들이 참가해 대표적인 국제 행사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 복잡하고 까다로운 공식절차를 생략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의 비공식적인 회담 진행으로 개별 교류와 새로운 아이디어의 창출을 가능케 하는 다보스정신이 정립되었다.
인도와 유럽경영포럼 재단간의 확고한 관계 구축 (Invitation to India)
■ 슈밥은 인도와의 관계구축을 위해 제네바에 위치한 재단 본부로 인도의 국민회의당 사무총장인 라지브 간디를 초청함으로써 1985년 인도 뉴델리에서 진행된 인도경제정상회담(India Economic Summit)의 기틀을 확립하였다.
산업별 분과회의의 개최 (On the Industry Agenda)
■ 보다 구체적인 결과의 도출을 위해 정보통신분야에서 최초로 관련 산업 분과회의가 개최되었다.
■ 후지쓰, 도쿄은행, 닛산자동차 대표 등 일본기업이 처음 공식적으로 참가하였다.
다보스 외교의 등장 (Davos Diplomacy)
■ 사이프러스 분쟁5)으로 대립하던 그리스와 터키의 수상을 다보스포럼에 초청하여 1차 면담을 진행하였다. 이를 계기로 ‘다보스 외교’라는 단어가 등장하였다.
5) 영국의 지배를 받던 사이프러스가 1960년 독립하게 되면서 터키계 30%와 그리스계 70%로 이루어진 민족구성에 의해 민족 간 대립이 발생하면서 이 문제는 결국 터키와 그리스 정부 간의 영토분쟁으로 발전하였다. 양국 정부가 각각 군대를 파견함으로써 남·북 사이프러스로 군사적 대치상황이 발생하는 등 양국 간 긴장이 높아지는 가운데 다보스포럼에서 회담을 통해 발발 직전이던 전쟁을 무마시킬 수 있었다.
세계경제포럼의 원년 (Now, the World Economic Forum)**
■ 유럽경영포럼 재단의 비유럽국가 회원이 증가하면서 재단 명칭을 유럽경영포럼에서 세계경제포럼(WEF)으로 변경하고, 행사명칭도 유럽경영심포지엄에서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로 바꾸어 개최하면서 세계 경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였다.
다보스 선언문의 채택 (The Davos Declaration)
■ 1986년 터키-그리스 수상의 만남 이후 외교 분쟁이 재심화되어, 전쟁 발발 긴장감이 팽배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슈밥은 터키와 그리스 수상을 다시 다보스에 초청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그 결과 1988년 다보스 선언문 채택을 통해 전쟁 문제가 해결되었다.
■ 보다 효과적인 결론의 도출을 위해 약 200여개의 세부 세션을 진행하기 시작하였으며, 다보스 이외에도 16개국에서 연관된 포럼이 개최되었는데 이 중 5개는 유럽이 아닌 미국, 인도, 인도네시아, 중국, 브라질에서 개최되었다.
전 세계 회원의 폭발적 증가 (Global Membership)
■ 1989년까지 세계경제포럼 재단의 회원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는데 이 중 절반은 비유럽권 국가의 기업이었다. 이를 통해 다보스포럼은 세계정세를 가장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장소로 성장하였다.
■ 남북한의 정부관계자를 초청하여 다보스의 독특한 능력인 대립하는 국가간 대화와 화해의 장을 마련하였다.
독일의 통일과 새로운 유럽 (German Reunification and the New Europe)
■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짐에 따라 1990년 다보스포럼의 주요이슈는 독일의 통일 과정이었고 이에 대한 논의를 위해 서독 연방수상과 새로 선출된 동독의 수상이 다보스포럼에서 처음 회동하였다.
■ ‘새로운 유럽(New Europe)’ 세션에서 동유럽과 서유럽의 보다 원활한 교류를 위한 무역정책이 논의되었다.
■1990년에는 지역 또는 국가별 회의가 20여개에 달했으며, 이 중 8개가 비유럽권에서 진행되었다.
전쟁 발발에 따른 영향 (Despite War and a Coup)
■ 1991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 발발함에 따라 다보스포럼이 열리기 2주전 미국이 이라크를 쿠웨이트에서부터 몰아내기위해 ‘사막의 폭풍작전(걸프전쟁 작전명)’을 개시하였다. 전쟁 발발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포럼 재단은 포럼 개최를 강행하였지만, 전쟁의 여파로 약 18%의 참가자가 불참하였다.
■ 산업별 분과(Industry-specific event)를 총 10개 분야로 확대하였다.
■ 예술/문화 분야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고조됨에 따라 ‘세계예술포럼(World Arts Forum)’을 런칭, 8월 초 베니스에서 200명의 예술가를 초청하여 진행하였다. 이후 세계예술포럼은 다보스포럼과 함께 개최되고 있다.
넬슨 만델라의 다보스 참가 (Mandela in Davos)
■ 1992년 세계경제포럼 재단이 아프리카민족회의(Africa National Congress, ANC)의 새로운 지도자 넬슨 만델라를 초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새로운 정책에 대한 발표가 이루어졌다.
국제 공동이익을 위한 사회적 기업가 정신 (Entrepreneurship in the Global Public Interest)
■ 1993년 다보스포럼에는 ‘세계경제 회복을 위한 역량의 규합(Rallying all the Forces for Global Recovery)’이라는 취지 아래 800개 기업의 경영진과 150명의 정치인, 25개국 정부지도자, 200명의 전문가가 참석하였다.
1,000번째 회원의 가입 (One Thousand Members)
■ 세계경제포럼 재단의 1000번째 회원이 가입하였고, 회원수 조정을 위해 가입조건을 강화하였다.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영토갈등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의 외교장관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의장이 함께 손을 잡고 입장함으로써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새로운 시대의 도래 (Overcoming Indifference)
■ 25주년 기념 연간보고서(Annual Report)가 발간되었다.
■ 슈밥은 1990년대가 새로운 시대의 시작으로 평가될 것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21세기 예측-새로운 시대에 대한 10가지 주요 과제(Overcoming Indifference: Ten Key Challenges in Today’s Changing World)’를 발간하였다.
세계화에 따른 반발의 증폭 (A Mounting Backlash against Globalization)
■ 슈밥은 포럼 재단 이사인 클라우드 스마자(Claude Smadja)와 함께 점차 증폭하는 세계화 반발세력을 대상으로 세계화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기고하였다.
■ WEF의 인터넷 웹사이트인 www.weforum.org가 개설되었다.
새로운 목표달성을 위한 로고 제작 (Committed to Improving the State of the World)
■ WEF의 중대한 목적과 집중을 강조하기 위해 그들의 강령인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약속 (Committed to Improving the State of the World)’을 추가하여 새로운 로고를 제작하였다.
■ 다양한 활동을 위해 ‘파트너십 컨셉(Partnership Concept)’을 도입하여 지식과 견해를 공유함으로써 회원사간의 관계구축을 도모하였다.
세계경제포럼의 새로운 보금자리 (New Home)**
■ WEF는 1998년 제네바의 새로운 건물로 이동하였다.
■ ‘세계경제지도자 비공식모임’에서 선진국과 개도국 20개국으로 이루어진 기구 설립에 대한 의제가 도출되었는데 이는 후에 G20 설립의 모태가 되었다.
유엔글로벌컴팩트의 발족 (The UN Global Compact)
■ UN의 사무총장이었던 코피아난은 1999년 다보스포럼의 의제로 금융·경제·정보 등 국제화의 혜택을 모든 사람이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유엔의 활동에 민간 기업이 협력해 줄 것을 요구하는 내용의 ‘글로벌 컴팩트(Global Compact)’의 발족을 주창하였다. 이는 인권·노동·환경·반부패의 4대 분야 10대 원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000년 발족되었다.
다보스포럼 개최 30주년 기념 (The 30th Anniversary)**
■ 포럼 개최 30주년을 맞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수많은 미국 고위 정치인과 기업가를 대동하고 최초로 참가하는 등 다보스포럼 개최 이래 가장 많은 고위급 인사가 참여하여 포럼의 위상을 한층 드높였다.
평화적 관계구축 기회 획득 실패 (A Missed Opportunity)
■ 2000년 빌 클린턴 대통령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간 평화정착 노력 이후, 2001년 1월 양 국의 관계자가 이집트의 타바 컨퍼런스(Taba Conference)에서 기술적 회담을 진행하였고, 이후 다보스포럼에서 양국의 정상이 협의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장인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가 격정적 어조로 이스라엘을 공격함으로서 관계가 악화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 2001년 미국에서 9.11테러가 발생하여 슈밥이 뉴욕을 방문하였고, 2002년 다보스포럼을 뉴욕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하였다.
뉴욕에서 개최된 다보스포럼 (Davos in New York)
■ 9.11 테러 이후 미국 정부와 뉴욕시민들의 단결을 보여주기 위해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를 다보스가 아닌 뉴욕에서 개최, 102개국 2,700명이 참석하였다.
■ 전 산업분야를 이끄는 대표들로 구성된 국제기업협의회(International Business Council, IBC)가 창단되었다.
■ 기업, 정부, NGO가 함께 HIV/AIDS, 말라리아 등 세계적인 질병들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 코피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세계경제포럼 산하에 ‘국제보건대책위원회(Global Health Initiative, GHI)’를 창설하였다.
■ 세계경제포럼 재단이 유럽 33개국의 18-25세 젊은이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브릿징유러피언이니셔티브(Bridging European Initiative)’를 창설, 1000명의 참가자가 유럽지도층과의 온라인 대화를 위해 2주간 코펜하겐에서 열린 ‘유럽피안빌리지(European Village)’에 참가, 결과물로 새로운 유럽헌법 초안을 작성하였다.
국제적 긴장의 고조, 열린 포럼의 진행 (Global Tensions, Open Forum)
■ 이라크 전쟁에 대한 전망과 그에 따른 오일 파동 등 정치경제적 문제가 다보스포럼의 모든 회담에 드리워진 가운데 세계 안보에 대한 이슈가 다시금 집중 조명되었다.
■ 다보스포럼 개최 2달 후 이라크 전쟁 발발로 세계경제포럼 재단은 중동지역에 다보스 정신을 전파하기 위해 또 다른 연차총회를 요르단에서 개최하기로 협의하고, 2003년 6월 요르단의 사해에서 요르단 국왕의 후원아래 코피아난을 비롯한 러시아, 미국 등 안보관련 정상이 참석하여 중동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 2003년의 가장 큰 혁신은 일반대중을 위해 열린 포럼(Open Forum)을 개최한 것으로 다보스포럼의 정신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종교지도자, 전시주최자, 스위스 적십자 등 중요한 사회 구성원 간의 자율적 토론이 진행되었다.
다보스포럼의 성장을 이끈 파트너십 프로그램의 구축(Forging Partnerships with Industry and Young Leaders)**
■ 산업간 연계를 강화하기위해 산업 파트너십(Industry Partnership) 프로그램이 구축되었으며, 미래인재 양성을 위한 젊은지도자포럼(YGL)이 창설되었다.
글로벌산업센터 설립 (Building the Centre for Global Industries)
■ 세계경제포럼 재단은 사상 최초로 다보스포럼의 의장을 G8 국가에게 맡기는 방안을 수립하였고, 첫 의장으로 영국이 선정되었다.
■ 글로벌리더십펠로우 프로그램(Global Leadership Fellow Programme)을 새롭게 도입하여 뛰어난 인재를 발굴하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성장동력 (The New Drives of Growth)
■ 이미 해당 국가나 지역에서 높은 성과를 창출한 이후, 세계시장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글로벌 성장기업 커뮤니티(the Community of Global Growth Companies, GGC)’를 창설하였다. 2006년 6월, 중국 베이징에 GGC를 위한 중국지부를 설립하고 GGC 프로그램을 개발, 지원하였다.
■ 세계경제포럼 산하의 재난자원대책 네트워크(Disaster Resource Network, DRN)는 10월에 발생한 파키스탄의 대지진과 미국의 카트리나에 따른 피해를 지원하였다.
■ 올루세군 오바산조(Olusegun Obasanjo) 나이지리아 대통령과, 영국의 고든 브라운 수상,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2006년 다보스포럼에서 ‘결핵방지플랜(Plan to Stop Tuberculosis, 2006-2015)’에 동의함으로써 향후 10년간 전 세계적으로 결핵환자 5천만 명을 치료하고, 결핵으로 사망하는1천4백만 명의 환자를 살릴 수 있게 되었다.
하계 다보스포럼의 탄생 (Summer Davos)**
■ 2007년 9월 최초로 중국 대련에서 하계 다보스포럼(Summer Davos)인 ‘새로운 챔피언을 위한 연차총회(Annual Meeting of the New Champions)’가 개최되었다.
세계 통합의 필요성 대두 (Global Brains Trust)
■ 세계가 점차 복잡해지고 상호연계가 강화됨에 따라 세계경제포럼 재단은 협동적이고, 혁신적인 통합적 접근법의 필요성을 느껴 ‘글로벌아젠다협의회 네트워크(Network of the Global Agenda Councils, GACs)’를 창설하고, 68개 주요 회원이 11월 두바이에서 처음으로 회동하였다. 여기서는 단기적인 이슈가 아닌 장기적인 해결방안과 접근법을 모색하기 위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 2008년 빌게이츠가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를 다보스포럼에서 발표함으로써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직후 열린 하계 다보스포럼(Summer Davos)에서 원자바오 총리가 중국의 시장개방 30년에 대한 성과와 경제재건 및 정치구도 변화를 통한 현대화에 대한 ‘성장의 새로운 물결(The 다음 Wave of Growth)’을 발표하였다.
글로벌 위기의 해 (The Year of Global Crisis)
■ 리먼 브러더스 사건 등으로 세계 경제위기가 심화되자 2009년 다보스포럼에는 40여개 국가 수장과 100여명의 장관 등 고위급 인사가 대거 참석하여 현재의 위기에 대한 대응책을 모색하고 위기 이후의 미래에 대해 논의하였다.
■ 세계경제포럼 재단은 100번째 전략적 파트너(Strategic Partner)가 가입함으로서 목표치를 달성하였다. (WEF는 전략적 파트너를 100개사만 둘 계획이어서 현재 대기 중인 기업도 존재함.)
다보스포럼의 미래 (The Future)
■ 다보스포럼 40주년을 기념하여 향후 미래 비전과 로드맵을 공유하였다.
■ 이명박 대통령이 G20 서울 정상회의의 구성을 제시하기 위해 다보스포럼에 참석하였다.
2. 세계경제포럼의 창립자,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
세계경제포럼(WEF)의 창시자이자 재단 총재로 널리 알려진 클라우스슈밥은 독일 태생의 경제학자로 1938년 독일의 하벤스부르그에서 태어나스위스에서 성장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그는 전쟁의 영향으로화해(reconciliation)와 대화(dialogue)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는후에 세계경제포럼을 창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스위스 프라이부르그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에서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슈밥은 하버드대학교에서 공공정책 석사과정을이수한 후 스위스로 돌아와 스위스의 대표적인 기업인 에셔 비스(EscherWyss)의 경영 이사회에 소속되어 슐처 그룹(Sulzer Group)과 함께 1만명의직원을 통합하는 업무를 수행하였다.
1971년 슈밥은 1963년부터 66년까지3년간 재직했던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독일건설기계협회(VDMA)의요청으로 독일 기계산업의 현대 경영에 대한 책을 통해 후일 세계경제포럼의 기본 운영방침이 된 “이해관계자이론(Stakeholder Theory)”을정립하였다. 이를 적용하여 슈밥은 주주와 채권자뿐만 아니라 직원, 고객,공급자, 사회와 정부 등 조직에 관련된 모든 이해관계자(stakeholder)를위한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슈밥은 세계경제포럼(WEF)이 사회 내의 여러 이해관계자가 서로 협력할수 있는 접착제 역할을 할 것으로 규정하였다. 그는 정부나 기업,비정부기관들이 독자적으로 세계 과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의주요 구성원인 정부, 기업, 시민 단체가 다보스포럼에서 상호작용을 통해함께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그대로다보스포럼에 반영되어 매년 전 세계적인 논의와 협력이 필요한 의제를 선정하고, 그와 관련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초청하였는데, 이는 세계경제포럼이 현재의 위치로발전하는 토대가 되었다. 그는 세계경제포럼이 회의참가자에게 최신의 전략적 사고를 바탕으로 그들의견해를 정립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고 말한다.
한편, 슈밥은 그의 아내인 힐데(Hilde)와 함께 사회적기업을 위한 비영리기구인 ‘슈밥 재단(SchwabFoundation)’을 1998년 스위스 제네바에 설립하였다.슈밥 재단은 사회적 기업의 확산을 유도하고 이들기업들이 사회적 혁신과 진보를 이끄는 중요한촉매제로 자리잡도록 지원하는 목적을 가지고활동하고 있다. 이를 위해 슈밥 재단에서는 매년 20~25개의 사회적 기업을 선정하여 조명하고 있으며, 사회적기업 간의 커뮤니티를 조성하고 있다.
또한 사회적기업의 양성을 위해 40세 미만의 기업가를 대상으로교육과 지원을 수행하는 등 보다 나은 사회로의 변화를위해 노력하고 있다. 슈밥의 이러한 사회 통합에 대한관심과 노력이 세계 경제의 중심이자 환경, 문화의영역에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세계경제포럼을 이끌고있다고 볼 수 있다.
2007년 슈밥은 미국의 대표적인 시사잡지 타임(Time)紙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100인에 선정되었는데, 이에 1997년부터 2006년까지유엔의 사무총장을 역임한 코피아난은 다보스포럼의진행과정에서 친분을 쌓게 된 슈밥에 대해 아래와 같은에세이를 작성하여 타임지에 기고하기도 하였다.
前 UN 사무총장 코피아난이 바라본 슈밥 <2007년 Time 매거진 기고>
클라우스 슈밥과 나는 국제회의를 주최한다는 면에서 어느 정도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UN에서 국제회의를 개최하고클라우스는 1971년 스위스 다보스에 WEF를 창립하여 회의를개최하고 있다.
“In a sense, Klaus Schwab and I are in the same business:we’re both people who organize global meetings. I held mine atthe UN. Since 1971, Klaus, founder of the World EconomicForum, has been holding his in Davos, Switzerland.
독일 태생의 경제학자인 클라우스(69)는 잘 알려지지 않고접근이 어려운 스키리조트에서 국제적 현안에 대해 협력을강화하고 이해를 증진시키는 총회를 개최했다. 한 가지 뚜렷한목표에 매진함으로써 그는 다보스를 산업리더와 정치인, 종교인사,정책 입안자, 현역 운동가, 유명인사, 차세대 리더들의 모임장소로만들었다.
A German-born economist, Klaus, 69, turned his meetings atan initially obscure and still hard-to-reach ski resort into anannual event that nurtures understanding and spurs collectiveaction on global issues. With great single-mindedness, he builtDavos into a meeting place of business leaders, politicians,religious figures, policy-makers and, more recently, activists,celebrities and younger leaders.
다보스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최신 트렌드를 파악하며새로운 계획을 발의하기 위한 장소라는 의미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나는 이러한 점 때문에 1991년 다보스포럼이 인권과 글로환경,근로기준에 대한 UN과 글로벌 산업 리더들의 자발적 조약에 대한캠페인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로 판단했다.
Davos entered the global lexicon as a place you went to tryout new ideas, confirm trends or launch initiatives. That’s why,in 1999, I felt it was the right place to begin my campaign for avoluntary global compact between the UN and world businessleaders on respect for human rights, the environment andlabour standards.
다보스는 새로운 국제 사회를 위해 필요하다는 인식이 널리퍼져있는 것과 동시에 사회 운동가와 시위참가자에 의해 의심받고있기도 하다. 클라우스는 회의에 시위자들을 직접 초청함으로써이러한 반발에 잘 대응하고 있다. 그는 아내 힐데의 도움으로다보스를 최우선 순위로 고려할 수 있다. 같은 미팅 주최자로서나는 클라우스의 미팅이 나의 것보다 더 자유롭다는 것을 인정한다.그리고 그에 걸맞게 더 발전된 파티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Davos filled a need that was widely felt in a newly globalizedworld, but it also aroused suspicion among activists anddemonstrators. Klaus deftly overcame much of that by invitingthe protesters inside the tent. With the help of his wife Hilde,Klaus has kept Davos at the front of things. And, Klaus, as onemeeting organizer to another, I must acknowledge that yourmeetings were often livelier than mine. But then you could alsogive better parties!”
3. 세계경제포럼의 운영현황 및 특성
1. 세계경제포럼 재단의 조직 구성현황
1971년 클라우스 슈밥에 의해 스위스 제네바에 설립된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 재단은 전 세계의 산업, 정치, 학문, 사회 등을 이끄는 리더들을 독려함으로써 세계 경제를 향상시키는 독립된 국제기구로 어떠한 정치적 연고나 특정 국가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지 않는다. 세계경제포럼 재단은 다보스포럼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World Economic Forum Annual Meeting)의 개최뿐만 아니라 다양한 세부 커뮤니티별 회의, 리더십 프로그램의 운영, 글로벌 경제보고서 발간 등 폭넓은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세계경제포럼 재단의 활동은 재단 설립자이자 회장인 슈밥을 비롯하여 각 분과별 이사진(Managing Director)과 담당자들로 구성된 내부 인력에 의해 진행된다. 세계경제포럼 재단의 조직도를 살펴보면 주요 업무별로 담당자를 지정하고 세부 업무를 다시 분과별로 묶어 상위 관리자가 통합 관리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세계경제포럼은 재단의 미션과 가치, 브랜드를 지원하는 재단 이사회가 존재하는데 이들은 기업의 운영에서부터, 정치, 학술, 시민단체 등의 모범적인 관리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기업 신뢰도와 공신력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사회 회원은 3년간 활동을 통해 이러한 기준의 제시뿐 아니라 세계경제포럼 재단의 관리 현황, 새로운 회원의 영입, 재무현황, 전략의 설립 등 재단의 전반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현재 재단 이사회 회원은 슈밥을 포함하여 총 22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계경제포럼 재단의 2009/2010년 기준 직원 수는 계약직 포함 총 367명으로 매우 큰 규모이다. 지난 5년간 인력현황을 살펴보면, 2005/2006년 204명이었던 정직원 수가 2009/2010년에는 319명으로 115명이나 증가하였는데, 이는 다보스포럼의 규모가 커지고 세부 프로그램이 확대됨에 따라 지속적으로 내부 인력을 충원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경제포럼 재단은 세계 경제를 대표하는 기구인 만큼 다양한 국적을 가진 직원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현재 약 56개국의 전문 인력들이 활동하고 있다.
한편, 세계경제포럼 재단은 전 세계적으로 우수한 인재들에게 정부나 기업, 시민단체 등의 국제경영을 위한 능력과 리더십을 향상시켜줄 프로그램이 부재한 것을 깨닫고, 그들의 능력배양을 위해 3년간 세계경제포럼 재단에서 근무하는 전문 프로그램인 ‘글로벌 리더십펠로우(Global Leadership Fellows, GLF)’를 도입하였다.
2005년 처음 진행된 이 프로그램에는 전 세계 각지에서 총 1,800명이 지원하였고 이 중 선별된 120명에 대한 면접을 통해 최종적으로 35개국에서 47명의 인재를 발탁하였다. 최종 선택된 인재들은 모두 세계적인 수준의 대학을 졸업한 평균 31세의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현재 세계경제포럼 재단의 정직원으로 전환되거나 리더십 프로그램의 커리큘럼과 구성을 기획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GLF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정착함에 따라 세계경제포럼 재단은 매년 약 30명의 새로운 펠로우(fellows)를 발탁하고 있다.
2. 세계경제포럼 재단의 회원 구성현황
다보스포럼은 초청자 외에는 세계경제포럼 재단 회원만이 참가할 수 있는 폐쇄된 형태의 포럼이기 때문에 재단은 회원의 모집과 관리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 포럼 재단의 회원은 세계 경제를 이끌어가는 주요 기업들로 산업분야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연간 매출액이 미화 50억 달러(한화 5조8천억원)6)이상인 기업들이다. 또한 이 기업들은 그들이 속한 산업이나 국가의 선도기업이며, 해당지역의 관련 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포럼 재단의 회원은 조건에 따라 5가지 유형으로 구분되는데, 재단 회원(Foundation Members), 전략적 파트너(Strategic Partners), 산업 파트너 (Industry Partners), 글로벌성장기업(Global Growth Companies), 기술선도기업(Technology Pioneers) 등으로 분류되어 관리된다.
먼저 일반 회원인 재단 회원(Foundation Members)은 세계 경제를 이끄는 1,000개의 다양한 기업들로 포럼 재단의 지속적인 운영과 세계 경제의 현안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함에 있어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재단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매년 4만2천5백 스위스프랑(US$40,658 / 한화 약 5천만원)7)의 회비를 납부해야 하며, 다보스포럼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참가비로 1만8천 스위스프랑(US$17,220 / 한화 약 2천1백만원)을 별도로 납부해야 한다. 재단 회원은 다보스포럼의 200개가 넘는 세부 세션 중 모든 참가자에게 오픈된 프로그램에만 참석이 가능하며, 산업별 세션 등 보다 세부적인 프로그램의 참가를 희망할 때에는 산업 파트너 또는 전략적 파트너 이상의 회원이 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전략적 파트너는 세계 경제를 이끌어가는 주요한 핵심 기업들로 구성되는데, 이들은 포럼 재단의 정책과 프로젝트, 대책위원회 등에 직접 참가하여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거나 진행방향에 대해 자문한다. 또한 이들은 포럼의 운영에 있어 재정적 지원과 함께 포럼 재단 운영을 위한 전담인력을 지원하는 등 많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 재단의 전략적 파트너가 되기 위해서는 매년 50만 스위스프랑(US$478,332 / 한화 약 5억8천5백만원)의 연회비를 지불해야 하며, 다보스포럼의 참가비는 재단회원과 마찬가지로 별도로 납부해야 한다.
포럼 재단의 산업파트너는 건설, 항공, 기술, 관광, 식음료, 에너지, 엔지니어링, 금융서비스 등 다양한 사업 분야를 대표하는 기업들로 구성되어 있다. 산업파트너가 되기 위해서는 25만 스위스프랑(US$239,166 / 한화 약 2억9천만원)의 가입비가 필요하며, 전략적 파트너와 마찬가지로 다보스포럼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참가비를 납부해야 한다.
세계경제포럼 재단은 이미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여 활동하고 있는 기업과 더불어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되는 기업 중 연간 매출액이 미화 1억 ~ 50억 달러 수준이면서 연간 성장률이 15% 이상인 기업을 ‘글로벌성장기업’ 회원으로 분류하여 관리하고 있다. 또한 재단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여 삶을 질을 향상시키는 기업을 별도로 선정하여 ‘기술선도기업’ 회원으로 채택하는 등 세분화된 회원관리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처럼 포럼 재단은 일정 조건에 부합하는 세계적인 기업들을 회원 유형별로 차등을 두어 관리하고 있는데, 회원가입 조건이 매우 까다로움에도 불구하고 현재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1,200개 이상의 기업과 단체가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SK그룹과 현대차그룹, 대성그룹 등이 가입하는 등 적극적인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SK그룹은 국내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전략적파트너’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6) 2010년 평균환율 적용하여 한화로 전환 (US$1=1156.05원)
7) 다보스포럼이 개최된 2011년 1월 평균환율을 적용하여 한화와 US$로 전환 (CHF1=1169.99원=US$0.9567)
3. 세계경제포럼 재단 커뮤니티
세계경제포럼 재단의 주요 활동 중 하나는 회원과 파트너 기업의 보다 깊은 교류활동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독특한 커뮤니티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포럼 재단은 회원의 유형과 참가기업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커뮤니티를 구성, 회원기업들의 적극적인 참가와 의견교류를 지원하고 있다. 먼저 전략적 파트너(Strategic Partners)를 위한 커뮤니티는 세계 각지의 여러 산업분야를 대표하는 선별된 100개 기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업의 구성원뿐만 아니라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multistakeholder)와의 교류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산업 파트너(Industry Partners)로 구성된 커뮤니티는 세부 산업분야별 기업간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각 산업간 또는 연계 산업간 다양한 이슈들에 대해 논의하고 전략적인 해결방안의 도출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2007년 구성된 글로벌성장기업 커뮤니티(Global Growth Companies Community)는 현재 60개국의 300개 기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매년 중국에서 진행되는 하계 다보스포럼인 ‘새로운 챔피언을 위한 연차총회(Annual Meeting of the New Champions)’와 다양한 지역별 회의를 통해 교류하고 있다. 그리고 기술선도기업 프로그램(Technology Pioneers programme)을 통해 포럼 재단은 매년 전 세계의 기술적 혁신을 이끈 100개 기업을 선별하고, 그 중 30개사를 최종적으로 기술선도기업으로 선정한다.
기술선도기업은 정보기술과 뉴미디어(Information Technology and New Media), 환경과 에너지(Energy and Environment), 사회과학과 건강(Social Science and Health) 등 총 3개 분야의 기업들을 대상으로 하여 학자, 벤처기업 임직원 등으로 구성된 평가위원회(Selection Committee)에 의해 선정된다.
회원의 유형에 따른 커뮤니티 외에도 특정한 목적이나 대상을 위한 커뮤니티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위기대처 네트워크(Risk Response Network), 사회적 기업을 위한 슈밥재단(Schwab Foundation for Social Entrepreneurship), 젊은지도자포럼(The Forum of Young Global Leaders), 글로벌아젠다협의회(Global Agenda Councils), 여성지도자와 양성 평등(Women Leaders and Gender Parity), 국제대학교육 지도자포럼(Global University Leaders Forum) 커뮤니티 등이 구성되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먼저 위기대처네트워크는 위기상황에 대한 적절한 대처방안 모색 및 공동대응을 위해 세계경제포럼 이해관계자 전체를 대상으로 구성되는데, 경제의 불확실성, 인구통계학적 변화, 환경자원의 고갈 등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를 통합하여 대응책을 마련하고 실행해나가는 중심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국제현안에 대한 범세계적 대책마련을 위해 설립한 글로벌아젠다협의회(Global Agenda Council)는 다양한 회의 및 행사개최를 통해 관련 현안에 대한 해결책 등을 도출하고 있다.
글로벌아젠다협의회 회원은 주요 사안별로 선정된 정·재·관·학계의 다양한 관계자를 초청하여 구성되는데, 일반적으로 각 협의회는 15~20인으로 이루어진다. 2008년에는 이러한 협의회간의 협력관계 구축을 위해 글로벌아젠다협의회 네트워크(Network of Global Agenda Councils)가 설립되어 국제협력을 도모하고 있다. 협의회 멤버들은 화상회의와 글로벌아젠다서밋(Global Agenda Summit)을 통해 제반 현안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한편, 포럼 재단은 보다 나은 미래 사회의 건립을 위한 사회적 기업가 정신의 확산을 위해 슈밥 재단(Schwab Foundation for Social Entrepreneurship)을 설립하여 교육, 건강, 환경, 기업개발 등 모든 분야에서의 혁신과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더불어 여성 기업의 확대와 양성평등을 위해 적극적으로 여성기업의 역할 신장을 위한 프로그램(Women Leaders and Gender Parity Programme)을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특히, 미래의 글로벌리더 양성을 위해 젊은지도자포럼(The Forum of Young Global Leaders)을 운영하여 매년 100~200명의 40세 이하 차세대 지도자를 선정,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및 활동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포럼 회원 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고 실천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저변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포럼 재단은 2006년 국제대학교육 지도자포럼(Global University Leaders Forum)을 설립하여 세계 경제정책과 현안에 대한 세계 최고 대학 교수들의 견해를 수렴하고 있다. 현재 국제대학교육지도자 포럼에는 전 세계 26개의 주요 대학이 참여하고 있으며, 포럼 재단의 자문 및 글로벌아젠다협의회의 의장으로 활동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4. 세계경제포럼 재단의 해외 지부 및 행사 운영현황
세계경제포럼 재단은 2005년부터 세계 각지에 분포되어 있는 재단 회원과 파트너를 보다 원활하게 지원하고 국제적인 정세의 흐름을 빠르게 파악하고 대응하기 위해 세계 주요지역에 지부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현재 포럼 재단의 지부는 미국, 중국, 일본 3개 지역에 설치되어 있으며, 그들을 통해 재단의 정보력과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
2005년 뉴욕에 설립된 ‘세계경제포럼 유에스에이(WEF USA)’는 세계경제포럼 재단의 자회사이지만 법적으로는 독립된 비영리 법인단체로 계약에 의거하여 지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현재 8명으로 구성된 이사회가 관리하고 있으며, 미국을 중심으로 중남미를 포함한 미주지역의 회원기업 및 파트너기업의 활동을 지원하고 해당 지역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를 기획, 운영하고 있다.
2007년 베이징에 중국 내 최초의 국제재단으로 설립된 ‘세계경제포럼 차이나(WEF China)’는 현재 13명의 상근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제네바, 뉴욕, 도쿄지부와 연계하여 회원기업과 파트너기업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2007년부터 중국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개최되고 있는 하계 다보스포럼(Summer Davos)의 운영을 지원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2009년 일본 도쿄에 설립된 ‘세계 경제포럼 재팬(WEF Japan)’은 일본 내 다보스 커뮤니티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설립되었으며, 일본지역의 회원기업과 파트너기업을 관리하고 있다.
<표6>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세계경제포럼은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지역에 지부를 설립하여 해당 지역에 위치한 회원기업 및 파트너기업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지원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지부가 설립된 지역에서는 지부를 중심으로 커뮤니티의 활성화 및 다양한 소규모 행사 진행 등을 통해 더욱 왕성한 활동들을 펼치면서 세계경제포럼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 재단은 매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되는 연차총회 외에도, 매년 9월 중국에서 하계 다보스포럼(Summer Davos)으로 알려진 ‘새로운 챔피언을 위한 연차회의(Annual Meeting of the New Champions)’와 포럼 재단의 글로벌아젠다 협의회 네트워크(Network of Global Agenda Council)를 위한
‘글로벌아젠다 서밋(Summit on Global Agenda)’을 매년 10월 아랍에미리트에서 개최하고 있다. 그 이외에도 남미, 중동, 북아프리카 등 주요 지역을 위한 경제포럼의 개최를 지원하고 있다.
5. 세계경제포럼 재단이 발간하는 주요 보고서
세계경제포럼 재단은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를 비롯한 다양한 회의 및 커뮤니티의 운영 활동 외에도 국제현안에 대한 심층적인 고찰이 담긴 여러 유형의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는데, 그 중 ‘글로벌리스크보고서’와 ‘글로벌경쟁력보고서’가 가장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먼저 2006년부터 매년 발간되고 있는 글로벌리스크보고서(Global Risks Reports)는 세계화, 인구통계학적 변화, 빠른 기술변화, 상호교환의 증가, 경제 불확실성 등 현재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환경적 변화가 야기하는 예측되지 않은 복합적 위기상황이 미치는 영향과 이에 대한 범세계적 협력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글로벌리스크 보고 서는 포럼의 위기 대처 네트워크 (Risk Response Network) 활동의 결과 물로 관련 학계전문가 및 애널리스트 등으로 이루어진 네트워크 회원의 조사 연구와 논의를 통해 이루어 진다.
또한, 세계경제포럼 재단은 세계 주요 130개국의 경제 환경 과 경쟁력에 대한 글로벌 경쟁력 보고서 (Global Competitiveness Report)를 발간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경제의 통합과 복합화 에 대한 다양한 조사와 연구결과 를 담고 있다.
글로벌경쟁력보고서는 포럼 재단의 ‘글로벌경쟁력·성과센터(Centre for Global Competitiveness and Performance)’가 발행하는 대표적인 보고서로, 이 보고서에서 발표되는 국가별 경쟁력 순위는 2004년 세계적인 경제학자이자 콜롬비아대학교의 사라이 마틴(Sala-i-Martin) 교수가 세계경제 포럼을 위해 개발한 ‘글로벌 경쟁력지수(Global Competitiveness Index, GCI)’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GCI는 연구기관(institutions), 인프라(infrastructure), 거시경제환경(macroeconomic environment), 건강과 기초교육(health and primary education), 고급교육과 훈련(higher education and training), 상품시장 효율성(goods market efficiency), 노동시장 효율성(labour market efficiency), 금융시장발달(financial market development), 기술적 발전(technological readiness), 시장규모(market size), 비즈니스 매너(business sophistication), 혁신(innovation)으로 구성된 12개의 주요한 경쟁력 지표로 구성 되는데, 이를 바탕으로 각 국가의 발전정도에 따른 경쟁력 모형에 대한 밑그림을 제시할 수 있다.
글로벌경쟁력·성과센터는 ‘글로벌경쟁력보고서’ 외에도 글로벌무역활성화보고서(The Global Enabling Trade Report), 글로벌성별격차보고서(The Global Gender Gap Report), 글로벌정보기술보고서(The Global Information Technology Report), 관광경쟁력보고서(The Travel & Tourism Competitiveness Report) 등 다양한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WEF에서 발간되는 모든 보고서들은 WEF 홈페이지(www.weforum.org)에서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다.
6. 세계경제포럼 재단의 재정현황
세계경제포럼 재단은 회원기업의 연회비와 참가비, 파트너십에 의한 후원금 등을 통해 재정을 확보하는데 다보스포럼의 개최 이래 매년 흑자를 기록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최근 5년간 포럼 재단의 재정을 살펴보면, 2005/2006년1억477만 스위스프랑(한화 약 830억원)이던 총수입 규모가 2009/2010년 1억4,341만 스위스프랑(한화 약 1,640억원)으로 약 1.4배 증가한 반면, 수익규모는 2005/2006년 203만 스위스프랑(한화 약 16억원)에서 2009/2010년에는 101만 스위스프랑(한화 약 12억원)으로 50%나 감소하였다. 사실 세계경제포럼 재단은 비영리기구인 관계로 이윤 창출이 주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재단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제외하고 수익의 대부분을 다보스포럼 개최에 활용하고 있다. 이는 다보스포럼의 질적수준 제고와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 등을 통한 참가자의 만족도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8) 1CHF=792.695원(2005/2006), 768.64원(2006/2007), 896.255원(2007/2008), 1096.065원(2008/2009), 1143.29원(2009/2010)
4. 세계경제포럼의 3대 핵심 성공전략 분석
다보스포럼이 최초 개최에서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도달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포럼의창시자인 슈밥이 초청한 세계적인 수준의 연사들이었다. 세계적인 명사의 강연을 듣기 위해기업의 CEO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다보스포럼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이는후에 각국의 정부관계자, 세계적인 석학, 그리고 경제계 유명인사를 유치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지금도 다보스포럼이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장 큰 원천은 거물급 인사의 참가에 있다.또한 슈밥은 포럼을 처음 설립할 당시부터 포럼 참가자의 수준과 자격을 철저하게 세계경제에영향력을 미치는 기업의 대표자로 한정하고, 참가자의 규모가 줄어들더라도 그 기준을 끝까지지켜나갔다. 이는 다보스포럼의 전반적인 질적수준 향상과 참가자의 자부심 고취로 이어져세계경제포럼 재단의 회원자격이 되는 기업들이라면 흔쾌히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도 회원에가입하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하게 되었다.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는 초청연사 이외에는회원에게만 참가 자격이 주어지는데, 포럼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산업별, 지역별로 차등이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연 매출규모가 미화 50억달러(한화 5조8천억원) 9) 이상이 되어야 하고,매년 4만2천5백 스위스프랑(US$40,658 / 한화 약 5천만원)10)의 회비를 납부해야 한다.
또한,포럼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별도로 1만8천 스위스프랑(US$17,220 / 한화 약 2천1백만원)의참가비를 납부해야 한다. 그러나 이처럼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포럼 연차총회에 참가하더라도,모두에게 오픈된 일부세션에만 참석할 수 있으며, 업계 고위 관계자들이 참가하는 프라이빗세션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산업회원(Industry Partner)’ 이상의 등급이 되어야 하는데산업회원으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25만 스위스프랑(US$239,166 / 한화 약 2억9천만원)이필요하다.
또한 기업 당 5명의 직원에 대한 참가자격이 주어지는 ‘전략적파트너(Strategic Partner)’등급은 회원 가입비만 50만 스위스프랑(US$478,332 / 한화 약 5억8천5백만원)이며 여기에참가비는 또다시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 따라서 전략적파트너 기업회원 5명이 포럼에 참가하는경우 기업은 최소한 59만 스위스프랑(US$564,431 / 한화 약 6억9천만원)이 필요하다. 이러한까다로운 가입 조건과 비싼 비용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포럼 재단은 모집하고자 했던 목표치인1,000개 재단 회원기업과 100개 전략적 파트너 기업을 모두 유치하여 더 이상 신규 기업회원을받지 않고 있다.
이처럼 높은 비용이 소요됨에 불구하고 벌써부터 포럼 회원에 가입하기 위해대기하는 기업이 있다는 것은 다보스포럼의 위상을 방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010년세계경제포럼 재단은 파트너십 수입으로만 6,215만 스위스프랑 (US$65million / 한화 약 7백억원) 11)의 수익을 올렸다.
또한, 세계경제포럼은 정계 인사를 초청할 때 철저히 현직에 있는 인물만을 초청하여 세계경제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정치인, 기업가, 시민단체가 교류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포럼재단의 연사 초청시스템은 항공료, 숙박비, 식사비 외에 강연료 등은 일체 지급하지 않으며, 모든연사에게 5~10분의 연설시간을 동등하게 배정함으로써 외부세력과 결탁되지 않은 중립적기구로서의 성격을 지켜가고 있다.
9) 2010년 평균환율 적용하여 한화로 전환 (US$1=1156.05원)
10) 다보스포럼이 개최된 2011년 1월 평균환율을 적용하여 한화와 US$로 전환 (CHF1=1169.99원=US$0.9567)
11) 2010년 평균환율 적용하여 전환 (CHF1=1111.94원=US$1.039)
‘다보스포럼’ 참가비는 과연 얼마나 들까?
매년 1월이 되면 다보스포럼의 세계적인 명사 강연에 대한 소개와 함께 국내 기업의 참가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언젠가 한번쯤은 다보스포럼에 참가하고싶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보스포럼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과연 얼마의 비용이 필요할까? 먼저, 다보스포럼에 참가하기 위해서는세계경제포럼의 회원이 되어야 하는데 가입 자격은 산업별, 지역별로 조금 다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연간 50억달러 (한화 5조3천억원) 이상의 매출액을가진 기업 중 선별된다. 일단 이 조건을 통과했다고 가정하고 참가비용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재단회원(Foundation Membership) 연회비: 4만2천5백 스위스프랑(한화 5천만원)
■ 산업파트너(Industry Partner) 연회비: 25만 스위스프랑(한화 약 2억9천만원)
■ 전략적파트너(Strategic Partner) 연회비: 50만 스위스프랑(한화 약 5억8천5백만원)
■ 다보스포럼 참가비(1인당): 1만8천 스위스프랑(한화 2천1백만원) 숙박, 식사, 회의 참가비 포함
■ 항공료(취리히 직항 왕복/일반석/2012년 1월 25일~29일 기준): 약 200만원
※ 취리히-다보스 간 셔틀버스 운행: 왕복 120 스위스프랑(한화 약 14만원)
■ 기타 체재비: +α
따라서 다보스포럼의 다양한 세션 중 참여제한이 없는 세션에만 참석 가능한 재단회원으로 참가하는 경우, 1인이 지불해야하는 비용은 연회비 및 참가비,항공료 등을 포함하여 최소 7천3백만원, 여기에 보다 다양한 회의의 참석과 활동을 위해 산업파트너가 되는 경우에는 최소 3억1천3백만원, 전략적파트너로참석하는 경우에는 최소 6억8백만원이 필요하다.
슈밥은 포럼의 창립 초기부터 내세운 다보스포럼의 중요 컨셉 3가지를 4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흔들림 없이 지켜가고 있다. 다보스포럼이 내세우는 기본 방침은 다음과 같다.
① 참가자와 초청인사에 대한 명확한 규정(Rule)
② 이해관계자 이론(Stakeholder Theory)에 입각한 프로그램 구성
③ 대화와 교류를 통해 보다 나은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
이러한 기본 방침은 다보스포럼의 이념에서부터 시작하여, 다보스포럼의 전체 구성, 조직 등운영방침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지금의 다보스포럼이 존재하게 한 초청 연사의 선정,주요 의제의 결정, 세부 분과회의의 선정 등에 있어서도 기본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지켜나감으로써 다보스포럼은 초심을 잃지 않고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또한 다보스포럼은 기존의 대형 이벤트가 가지는 복잡하고 지루한 공식절차를 생략하고,개인적 친분관계를 보다 용이하게 형성할 수 있도록 아래에 제시된 바와 같이 타 행사와 구분되는‘다보스 정신’에 입각한 행사를 구성하고 있다.
① 공식절차 생략
② 개별적 교류 및 관계 구축
③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의 의견교류 (Brainstorming)
④ 참가자가 다양한 세부 커뮤니티에 속함으로 해서 적극적인 참여 유도
이를 통해 다보스포럼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은 새로운 대화와 협력의 공간을 제시할 수있었고, 이러한 공간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전 세계의 주요 인사들을 다보스포럼으로결집시킬 수 있었다. 다보스포럼은 바로 이러한 기조를 바탕으로 행사를 개최, 운영하기 때문에국제적으로 대립관계를 이루고 있는 국가 간의 화해와 교류를 이끌어내는 완충적 역할을 수행할수 있는 것이다.
세계경제포럼 재단은 전 세계 각국에서 선별한 우수한 인재들을 활용하여 프로그램구성에서부터 현장 운영에 이르는 다보스포럼 운영의 모든 프로세스를 직접 진행하고 있다.특히 다보스포럼의 개최뿐만 아니라 재단의 운영, 세부 커뮤니티 구성, 연구보고서 발간 등재단의 모든 업무를 내부직원이 직접 처리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은 설립 당시부터 재단형태로 운영되고 있는데, 내부직원을 통한 직접적인 운영은 해당분야의 노하우를 축적하고최적의 관리 시스템을 확보할 수 있어 포럼의 지속적인 발전을 가능케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뛰어난 인재의 등용을 위해 글로벌리더십펠로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관련분야 전문가를채용함으로써 수준 높은 프로그램의 구성과 효율적인 현장 운영능력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이러한 재단의 인력운영 방침은 다보스포럼의 질적, 양적 성장을 견인하는 중요 요인으로작용하고 있다.
또한 포럼 재단은 다보스포럼을 개최함에 있어 항상 최상의 회의 환경을 지원하기 위해 최신기술과 장비를 도입함으로써 최적의 시스템을 유지해왔다. 1987년에는 콩그레스 센터(CongressCentre)에 비디오폰을 설치하여 화상통화 시스템을 도입하였고, 2009년에는 최근 기술분야의가장 뜨거운 이슈인 ‘소셜네트워크(Social Networking)’를 도입하여 마이스페이스(MySpace),유투브(YouTube)를 통해 전 세계 어디서든, 누구든 다보스포럼의 주요 강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페이스북(Facebook), 트위터(Twitter)와도 연계하여스마트폰으로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으며, 다보스포럼 기간 중에는 전 세계청취자가 라이브스트림닷컴(Livestrem.com)이나 퀵닷컴(Qik.com)을 통해 패널에게 질문할 수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다보스포럼의 참가자가 프로그램 아젠다 및 부대행사 일정에관한 정보를 모바일로 획득할 수 있는 안내데스크를 설치, 운영함으로써 인건비를 절약함은물론 최첨단 기술의 사용을 통한 새로운 이슈를 생성하고 있다. 이처럼 다보스포럼은 언제나가장 최신의 기술을 접목함으로써 포럼 운영의 효율성 향상뿐만 아니라 회의 참가자들에게 또다른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다.
5. 한국의 역대 다보스포럼 참가현황
다보스포럼이 세계 정·재계 인사들의 주요 집결지로 인식됨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정부차원에서의 대표단 참가와 관련기업의 참가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특히 SK는 그룹차원에서 매년 대규모 출장단을 꾸리고 있으며, 최태원 회장은 1995년 이래 14년간 단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 특히 2010년엔 G20 정상회의의 서울 개최를 지원하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을 위시로 한 대규모 인사가 참가하여 주요 현안에 대해 논의하였다.
2009년부터는 세계 주요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국에 대한 깊은 인상을 전달하고 보다 적극적인 홍보를 위해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주관 하에 ‘한국의 밤(Korea Night)’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의 밤’ 행사는 한국의 브랜드가치를 높이기 위해 전 세계 주요 인사들을 초청하여 진행되는데, 이번에 개최된 2011년 한국의 밤 행사에는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 총재와 제이콥 프렌켈 JP모건체이스 회장, 왈리드 새마 모건스탠리인터내셔널 회장 등 거물급 인사와 콜럼비아대 교수 등 저명인사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이날 행사의 참석자들은 G20 서울 정상회의 개최 이후 한국의 국격이 크게 높아졌다고 평가하고 경제회복기로 접어드는 올해에도 한국 기 선전이 예상된다며 글로벌 경제에서의 한국의 역할에 대해 많은 관심을 표명하였다. ‘한국의 밤’ 행사는 다보스포럼이 개최되는 기간 중 스위스 다보스의 중심가에 위치한 호텔에서 진행되는데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모로사니 슈바이처 호프 호텔에서 진행되었다. 2010년에 진행된 한국의 밤 행사에서는 G20 서울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하여 차히아긴 엘베그도르지 몽골 대통령, 벨기에 필리프 왕세자 부부, 구리아 OECD 사무총장 등 400여명이 참석하여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6. 세계경제포럼 재단의 미래 발전전략
세계경제포럼 재단은 2010년 창립 40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40년간의 다보스포럼의 성장을 기반으로 향후 발전방향에 대한 로드맵(Roadmap)을 제시하였다. 다보스포럼은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글로벌 리더들이 의장으로 참석함으로써 지금의 명성을 획득할 수 있었는데, 산업 커뮤니티(Business Communities)에서 시작하여 젊은지도자(Young Global Leader)와 같은 비산업분야 커뮤니티(Non-business Communities)까지 영역을 확대해가면서 ‘지속성’과 ‘충성도’를 바탕으로 국제적인 다중이해관계자(multistakeholder) 기구로 발전해 나갔다.
최근 10년간 다보스포럼은 지역별, 산업별, 이슈별로 세분화된 다양한 커뮤니티를 활성화함으로써 포럼의 목적을 달성시켜 나갔으며, 지식세대(knowledge generation)간의 원활한 교류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내·외부 전문가를 확보하여 활용하는 방법을 새롭게 개발하는 등 현재의 다보스포럼의 성장을 견인하는 프레임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렇게 완성된 성장 프레임을 바탕으로 세계경제포럼 재단이 내세운 미래 발전을 위한 전략적 컨셉은 다음과 같다.
세계경제포럼의 발표에 의하면 2011년까지 포럼은 그들의 모든 정보와 지식기반 활동들을 글로벌 위기에 보다 적극적이면서도 통합적이며 사전대응이 가능한 특별한 장치인 ‘글로벌시츄에이션스 페이스(Global Situation Space)’에 포함시킬 계획이다. 포럼 재단은 이러한 활동과 새로운 제안이 내부 연구조직인‘글로벌위기 네트워크(Global Risk Network)’와‘글로벌경쟁력네트워크(Global Competitiveness Network)’, ‘시나리오빌딩(Scenario Building)’으로 구성된 전략적 인사이트 팀과 세계적 이슈에 대한 분야별 전문가 패널인 ‘글로벌아젠다협의회(Global Agenda Council)’, ‘글로벌리 디자인이니셔티브(Global Redesign Initiative)’12)의 통합과 가상 커뮤니케이션 지식관리시스템인 웰컴(WELCOM)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 재단은 지난 40년간의 성과를 토대로 다중이해 관계자간의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포럼 재단은 향후 국제적 또는 지역적인 주요 과제에 대한 정책과 지원을 향상시키고 보다 나은 활동을 위해 2,30개의 혁신적인 포트폴리오를 운영할 예정이다. 전 세계적으로 정부, 개인, 학계, 시민단체, 의사결정자들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국제기구에 대한 요구가 강조됨에 따라 다보스포럼은 독립적이고 비공식적인 행사를 개최하여 의견교류에 효과적인 중립적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려 한다.
12) 글로벌리디자인이니셔티브(Global Redesign Initiative, GRI)는 분야별, 산업별, 정책별 차이를 뛰어넘어 포럼 내부의 커뮤니티 간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과제로 2010년 5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글로벌리디자인서밋(Global Redesign Summit)에서 최종 결정되었다. GRI는 포럼 내 각 커뮤니티 간의 네트워크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역할이 점차 다양화되고 강조되고 있다. 글로벌리디자인 과정은 국제협력구조를 향상시키기 위한 사고와 제언을 독려하는 다양한 회의와 활동을 공유함으로써 다양한 커뮤니티 간의 통합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7. 다보스포럼 운영의 시사점
다보스포럼을 개최하고 있는 세계경제포럼 재단은1971년 유럽경영포럼 재단에서 시작하여 현재 전 세계의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이자 정계, 재계,시민단체가 함께 의견을 공유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협력하는 대표적인 기구로 인식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재단이 다보스포럼을 전 세계의 주요 현안을 다루는대표적인 국제행사로 성장시킬 수 있었던 것은 설립초기부터 명확한 목표와 기준을 설정하여 확립한 “다보스정신”에 입각하여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변화하는 환경과시대적 요구사항에 즉각적으로 대응하여 꾸준히 대외적명성을 확보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특히, 포럼 행사를개최함에 있어 전 세계를 대표하는 정·재계 인사들을스위스의 다보스라는 한적한 도시에 초청하여 기존의복잡하고 딱딱한 형태의 회의가 아니라 편안하게의견교류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보다거시적인 관점에서의 이해와 협력이 가능토록 한 것이지금의 명성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다보스포럼이 전 세계적인 명사들이 참가하는대표적인 국제행사로 발돋움한 데에는, 세계경제포럼재단의 창립자인 클라우스 슈밥의 공이 매우 크다.
슈밥은 포럼의 운영 초기 개인이 가진 인적 네트워크를활용하여 해외 유명연사를 초청함으로써, 세계적인명사들이 포럼을 방문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고,포럼 창립 단계에서부터 이해관계자 이론(StakeholderTheory)을 적용하여 경제포럼임에도 불구하고 참가자의대상을 단순히 경영자로 한정하지 않고, 정치, 경제, 사회등 다양한 분야 인사들의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포럼의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다보스포럼은단순한 연차총회(Annual Meeting)의 성격을 뛰어넘어지역별, 산업별, 주요 이슈별로 다양한 세부 커뮤니티를만들어 회원들 간의 교류를 극대화시킴으로써 회원들의적극적인 참여를 도모하고 있다.전 세계적으로 대규모의 국제회의는 대개 정부나국제기구가 개최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세계경제포럼재단은 민간 재단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인 행사를 40년이상 장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다보스포럼의 핵심적인성공키워드는 정·재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명사들이포럼 행사에 참가하는 것과 그들이 도출하는 토론의결과물들인데, 세계경제포럼 재단은 이들을 초청하고관리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의 구축은 물론, 원활한 토론을통해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도록 짜임새 있는프로그램을 구성하고, 편안한 회의환경을 조성하여제공하는 등 행사의 기획 및 운영의 모든 부분을 조직내에서 직접 조정 및 관리해냄으로써 포럼의 성공을 이끌수 있었다.
또한 세계경제포럼 재단은 회원 가입기준을매우 까다롭게 하여 진입장벽을 높였는데, 이로 인해높은 수준의 회원만이 포럼에 참가하게 됨으로써,다보스포럼의 대외적 명성과 신뢰를 크게 향상시키는결과를 가져오게 되었고, 재단의 수익도 크게 증가하여포럼 재단의 성장을 견인하게 되었다.
다보스포럼은스위스의 작은 도시, 다보스를 누구나 다 한번은 들어본적이 있는 지역으로 변모시켰는데, 국제적인 행사가도시의 마케팅에 얼마나 크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다보스포럼의 개최지로도심의 컨벤션센터가 아닌 휴양지의 리조트가 선정된것은 한적하고 아늑한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다보스가 비공식적이고 편안한 분위기에서의 자유로운토론과 의견 교환을 목적으로 하는 다보스포럼을개최하는 데에 보다 적합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이제인구 11만명의 소도시 다보스는 국제적인 행사를개최하는 도시로서 대외적 명성을 드높이고 있다.
다보스포럼의 성공에 힘입어 그간 전 세계 각지에서이를 벤치마킹한 다양한 행사들이 수없이 개최되었다.우리나라에서도 약 10년 전부터 매일경제가 주관하는세계지식포럼, SBS가 개최하는 세계디지털포럼 등다양한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러한 행사들이국제적인 행사로 확고하게 자리잡기 위해서는 보다전략적인 행사운영을 할 필요가 있다. 앞서 살펴본세계경제포럼 재단의 다양한 전략들과 운영방침 등에대한 이해를 토대로 각 행사별 상황에 적합한 전략과방안을 수립·실행하여 국내에서도 세계적인 인지도와명성을 가진 국제적인 행사가 탄생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