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62, 리서치, 커버스토리

양적 성장 너머, 질적 전환의 기로

한국 전시산업은 지난 20여 년간 “더 크게·더 많이”를 향해 달려왔지만, 이제 성패를 가르는 기준은 총면적의 숫자가 아니라 형태와 활용의 질이다. 앞선 분석에서도 나타났듯이, 계획된 증설로 2032년 이후 적정의 문턱을 넘는다 해도 글로벌 메가 전시를 개최하기엔 연속 단일 전시면적의 한계와 운영 비효율이 여전히 발목을 잡는다. 본 고에서는 적정 규모 논의를 숫자 중심에서 벗어나 기능적 개념으로 재정의하고 질적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향 전환에 대해 제언하고자 한다.

앞서 분석한 내용을 토대로 한국의 MICE 인프라 공급 상황을 살펴보자면, 지금 한국은 ‘총량의 부족’과 ‘형태의 비효율’이라는 두 겹의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2025년 현재 국내 전시공간 공급은 339,537㎡이고, 2032년까지 590,000㎡로의 확대가 계획되어 있다. 앞서 심층분석한 결과와 비교하자면, 거시 수요지표를 기준으로 한 적정 구간은 약 78~80만㎡, 재정지출을 기준으로 한 적정 구간은 약 49만㎡로 제시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2032년 계획치는 재정 여건을 반영한 ‘적정’의 문턱을 넘지만, 거시지표 기반 수요와는 여전히 간극이 존재한다. 즉, 한국의 경제·무역 규모에 비해 현 공급은 부족하고, 계획된 증설로도 중·하단부에 머무른다. 2032년의 확대는 단기 부족을 해소하는 수준일 뿐, 상단을 지향하려면 추가 확충 여지가 분명히 남아 있다.
그러나 숫자만으로 이 문제를 읽어내기에는 중요한 맥락이 빠진다. 총면적의 크기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되려면 그 면적이 어떤 ‘형태’로 제공되는지가 결정적이다. 국내 일부 지역 전시장이 낮은 가동률을 보이는 현실은, 총합 면적이 적어서가 아니라 충분한 규모의 연속(Contiguous) 전시면적 확보에 제약이 있다는 것이다. 대형 국제전시는 대규모 전시홀과 컨퍼런스·쇼케이스·미디어 행사를 동시에 수용하는 통합 공간을 요구한다. 예컨대 독일 IAA 모빌리티(전시면적 약 260,000㎡), 미국 CES(전시면적 약 230,000㎡)와 같이 규모가 방대한 전시는 현재 한국에서 사실상 개최할 수 없는 실정이다. 분절된 공간의 단순 합계가 아무리 커도 동시 수용이 불가능하면 유치 자체가 어렵고, 그 결과 총량은 늘어도 질적 경쟁력은 상승하지 않는다. 따라서 ‘적정 규모’는 ㎡라는 숫자뿐 아니라 연속성, 집적도, 접근성, 물류·슬롯 등 운영 요건을 포함한 기능적 개념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앞선 글로벌 전시산업 통계 기반의 전시장 공급 규모에 대한 분석은 이 재정의에 설득력을 보탠다. 한국이 ‘전시장 비중 고(高)’ 모델을 지향할 경우, 상단 목표가 공격적이지만 불가능한 수준은 아님을 시사한다. 반대로 컨퍼런스·서비스형 행사의 비중이 높아 총면적이 상대적으로 작은 모델과 비교하면, 한국의 상단 목표는 다소 높은 편이다. 결국 전시장 총량은 단순한 경제 규모의 함수가 아니라, 산업정책의 방향, 전시산업 육성의 역사, 국가 차원의 허브 전략이라는 맥락 변수에 의해 좌우된다. 결국 한국이 향후 어떤 모델을 택하느냐에 따라 방향도 달라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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