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제학자 리처드 탈러(Richard Thaler), 캐스 선스타인(Cass Sunstein)이 공동 집필한 경제학 서적 ‘넛지(Nudge)’가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어떠한 선택을 강요하지 않고 부드럽게 유도하는, 자연스러운 개입’을 의미하는 ‘넛지’는 불확실성이 만연한 오늘날 효과적 설득 전략이 되고 있다. 이는 MICE 행사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 섬세한 접근이 필요한 웰니스 서비스는 특히나 ‘넛지’가 필요한 대목이다. 사실 MICE산업에서 웰니스 서비스는 낯선 주제가 아니다. 이전부터 참가자 만족도를 증진할 웰니스 프로그램에 관한 수요가 꾸준히 있었기 때문이다. GMI 39호에서도 ‘MICE 행사의 웰니스 활용 현황과 전략’을 다룬 바 있다. 당시에는 그저 웰니스 프로그램을 부수적인 옵션 정도로 여겼으나,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그 중요도와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 이제는 참가자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동인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저 선택사항이었기에 본 행사와 구분 지어졌던 웰니스가 아닌, 행사 전반에 웰니스를 녹인 ‘넛지 전략’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위드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웰니스 활용 전략을 파악하고자 이번 호에서는 글로벌웰니스연구소 및 정상회의(Global Wellness Institute and Global Wellness Summit)의 보고서에서 다루어진 사례를 통해 MICE 행사 속 웰니스 트렌드를 들여다보았다.
#웰니스가 재평가되는 이유…떠오르는 덤벨 경제
지난 1년 동안 지구촌 사람들의 건강 및 복지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했다. ‘덤벨 경제(Dumbbell Economy)1)’라는 용어가 생겨날 정도로 웰니스는 이제 사회 주요현상으로 자리잡았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본격화된 워라밸 문화는 덤벨 경제를 촉진하고 있다. MZ세대를 중심으로 시작된 ‘건강이 곧 재산’이라는 트렌드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 세대에 걸쳐 확산되고 있는 것. 또 코로나19로 다중 운동 시설 이용이 제한되면서 온라인 플랫폼 기반의 홈트레이닝이 증가한 점도 웰니스의 일상화를 부추겼다. 이 같은 변화는 MICE 업계에도 불어오고 있다. 최근 MICE 주최자들도 이러한 사회적 현상과 맞물려 ‘건강 및 방역’을 최우선 순위로 둔 웰니스 기반의 행사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트렌드 ① 행사 자체가 웰니스라는 관점…‘코로나 블루’ 치유할 정신적 웰빙 제공
전 세계를 강타한 이번 전염병은 고약하기가 이를 데 없다. 신체적 고통은 물론이고 심리적 고통까지 안겨주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고립감, 외로움을 낳았고 이는 ‘코로나 블루(COVID19 Blue)’로 이어졌다. 팬데믹이 장기화될수록 사람들은 서로와의 만남을 갈구하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안전한(방역 통제하에서 개최되는) 대면 회의는 많은 감정적 또는 정신적 활력을 회복하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사랑의 호르몬이라 불리는 ‘옥시토신’이라는 신경 펩티드는 대면 모임과 사회적인 활동, 유대감에 의해 촉발된다. 행복의 감정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사람 간의 상호교류가 필요하므로 회의산업은 ‘코로나 블루’ 극복을 위한 가장 적합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장기간 서로 거리를 둔 까닭에 사회적 상호교류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행사 기획자들은 이 점을 노려야 한다. 행사를 통한 웰니스 서비스를 완성하려면 참가자들이 대면 활동에 가질 수 있는 일시적 부담감을 줄여줄 경험 디자인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것. 헬스케어 행사 전문기업인 AIM 그룹 인터내셔널(AIM Group international)의 부사장인 파트리지아 셈프레베네 부요느로(Patrizia Semprebene Buongiorno)는 “정신적인 웰빙에 가장 중요한 것은 휴식을 강요하지 않는 ‘넛지 웰니스(Nudge Wellness)’가 중요하다”며 “참가자들이 누구에게도 강요받지 않고 행사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도록 모든 회의 프로그램을 섬세하게 기획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힐튼의 참가자 마음챙김(mindfulness)2)을 위한 조언
글로벌 호텔 브랜드 힐튼(Hilton)도 참가자들에게 행사 자체를 통한 웰니스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들은 회의 기획자들에게 조용한 공간을 필수로 확보해볼 것을 조언하고 있다. 이는 마음챙김 활동의 일환인 명상, 요가 혹은 휴식이 가능한 공간을 의미한다. 힐튼은 ‘이벤트준비 플레이북(EventReady Playbook)’을 통해 늘 색다른 웰니스 회의 및 아이디어를 꾸준히 게시하고 있다. 회의에 적용해볼만한 마음챙김 회의 프로그램(Mindful Meetings), 마음챙김 음식(Mindful Eating), 마음챙김 활동(Mindful Being)을 구성하여 참가자들이 정신적 웰빙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즉, 행사 곳곳에 정신적 휴식을 위한 요소들을심는 것. 이벤트기획사 더이벤트앨리(The Event Alli)의 힐러리 카트라이트(Hillary Cartwright)는 “이제는 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한 시대”라며 “앞으로 이벤트 및 회의업계에는 본 행사를 기획하는 것만큼 휴식 시간을 배분하는 일에도 중점을 두게 될 것”이라 덧붙였다.
트렌드 ② 이제 신체적 웰빙도 하이브리드로 챙긴다
코로나19 발병 이후 대부분의 웰니스 활동들은 온라인을 통해 진행되었다. 줌(Zoom)으로 요가 세션에 참여하거나 호흡 운동이나 가벼운 아침 스트레칭 등을 정기적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로 그 예이다. 켄터키 주립대학의 웰니스 담당 이사이자 웰니스 여행 컨퍼런스의 창립자인 앤티콴 베컴(Antiquawn Beckham)에 따르면, 이러한 웰니스와 기술의 콜라보레이션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하이브리드 행사처럼 하이브리드 피트니스 활동도 인기를 끌 것”이라 주장하며 “이제 우리는 세계 어디서든 기술 플랫폼을 통해 컨퍼런스에 참가하거나 운동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술의 발전 덕분에 온라인 참가자도 현장 참가자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경험을 할 수 있게 된 셈”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현장의 생생한 분위기를 느끼면서 직접 경험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시공간적 제약으로 인해 참여가 불가능했던 참가자들도 기술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행사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고, 그만큼 참가자의 경험 범위는 더욱 넓어지게 되었다. 다음 사례에서 한 가상행사가 참가자의 신체적 웰빙을 챙긴 방법을 살펴보겠다.
#미국치과의사협회의 창의적 디지털 마라톤
미국 치과의사 협회(American Association of Endodontists, 이하 AAE)는 코로나19로 인해 개최해왔던 행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2020년 연례회의는 취소할 수밖에 없었지만, 대신 회원사 누구나 가볍게 참가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캠페인을 실시하기로 했다. 2020년 4월에 예정되어있던 2020 연례회의의 대체 행사로 ‘2020 엔도 웰니스 챌린지(2020 Endo Wellness Challenge)’를 기획한 것. AAE는 캠페인 기간 내에 가장 많이 걸은 참가자에게 2021년의 온라인 연례총회 무료 등록권 혹은 교육 콘텐츠 플랫폼인 ‘엔도온디맨드(Endo on Demand)’의 무료 구독권 등의 상품을 제공하기로 했다. AAE의 부협회장인 타냐 킨스만(Tanya Kinsman)은 “사람들의 건강과 웰니스를 돕기 위해 이전부터 무척 해오고 싶었던 일”이라며 “개인을 위한 건강 및 웰니스 뿐만 아니라 치과의사협회 커뮤니티 차원에서도 매우 필요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번 챌린지에서는 AAE재단을 위한 운영기금 모금도 함께 진행하였다. 참가자들은 동료들과 함께 마일당 5달러를 기부하거나, 다양한 프로그램(예: ‘스텝 배팅(step bet)’ 게임 및 ‘보너스 스텝(bonus steps)’ 구매)에 동참하면서 모금에 참여할 수 있었다. 실생활에서는 운동도 하면서 온라인상에서 회원사간의 친목을 다질 수 있는, 가치로운 경험이 된 셈이다. 이번 행사에 기록된 총 걸음 수 약 500만보는 2만 달러 상당의 기부금으로 환산되었다.
트렌드 ③ 웰니스를 찾아 야외로 나선 MICE 행사
사실 회의시설 내에서 행사를 진행하다보면 햇볕을 쬐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게 된다. 특히나 코로나19로 인해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더 길어지면서 따사로운 햇살을 향한 그리움은 커져만 가고 있다. 이러한 아쉬움을 행사에서 해소해보는 것은 어떨까? 야외에서 행사를 진행한다면 참가자에게 행사는 더 이상 일이 아닌 힐링의 순간이 될 것이다. 힐튼의 특별이벤트영업부 이사인 켈리 노렌(Kelly Knowlen)은 “최근 기획자들은 참가자들의 건강과 웰빙을 중시하고 있다”며 “덕분에 야외 유니크베뉴를 찾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콘래드뉴욕다운타운도 루프탑 바를 활용하여 행사 전용 야외 유니크베뉴를 내놓고 있다. 매년 프랑스 알프스에서 개최되는 행사인 ‘서밋오브마인즈(Summit of Minds)3)’도 야외 웰니스를 적극적으로 적용한 사례로 꼽힌다. 행사를 이끌어가고 있는 티에리 말르레는 워크숍에 자연친화적 기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자연친화적 환경 속에서 워크숍을 진행하면 아이디어 교류가 더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면서 “자연이야말로 신체적 그리고 정신적인 웰빙, 즉 행복감을 얻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밋 오브 마인드의 지난해 행사는 코로나19로 인해 불가피하게 하이브리드로 전환되었지만, 올해는 9월 17일부터 19일까지 프랑스 샤모니에서 대면 행사로 개최될 예정이다.
트렌드 ④ 회의실에서 찾은 공간과 설비를 통한 웰니스
위드코로나 시대를 지나오며, 회의시설들도 웰니스에 주의를 기울이며 발전을 도모하기 시작했다. 도미니카공화국의 고품격 회의시설인 카사 데캄포리조트앤빌라(Casa de Campo Resort & Villas)도 ‘카사 케어스(Casa Cares)’ 프로그램을 도입, 웰니스를 위한 인프라 개발에 뛰어들었다. 카사 케어스 프로그램을 통해 개인 컨시어지 라운지에서 PCR 코로나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의 의료혜택, 리조트 담당 병원인 센트럴 로마나 메디컬 센터(Central Romana Medical Center)의 VIP서비스도 제공한다. 또 앱을 통해 각종 비대면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리조트 측은 “코로나19의 위협에 대응함과 동시에 미래 고객에게 안전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참가자에게 건강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고민해왔던 시간들은 베뉴만의 긍정적인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기획자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웰니스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해 11월 플로리다 팜 비치에 위치한 더 브레이커스(The Breakers)에서 진행된 ‘글로벌 웰니스 서밋(Global Wellness Summit)’은 행사장 내에 원단파장 자외선(Far-UVC) 조명을 설치하였다. 이는 피부 및 의복에 잔재하는 코로나바이러스를 99.9% 제거해주는 조명이다. 또 모든 회의 공간에 공기청정기를 배치하고, 의자 대신 사이클기구를 배치하여 창의적으로 좌석을 배치할 수 있도록 했다. 글로벌웰니스연구소의 최고 책임자인 낸시 다비스(Nancy Davis)는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회의장에 빈 공간이 많았는데, 고급 피트니스 시설처럼 사이클기구로 좌석을 배치하니 자연스럽게 거리두기를 지키면서 참가자 경험도 보다 풍성하게 디자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시사점 달라진 웰빙 인식…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능동성과 창의성
GMI의 지난 39호(2019년 11월 발행)의 ‘미팅·인센티브의 웰니스 활용 현황’을 살펴보면, 오늘날 운영되는 회의의 웰니스 요소 반영 수준은 ‘약간 고려된다’가 64%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당시에는 그저 웰니스는 있으면 좋지만 없다고 문제가 되지는 않는, 그야말로 선택사항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를 계기로 이제 웰니스는 MICE 행사 운영의 중심에 섰다. 인류의 건강과 안전 즉 ‘웰니스’의 무게가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대부분의 웰니스 프로그램은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방어적으로 만들어져 왔다. 하지만 앞으로 기획자들은 더욱 능동적인 웰니스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고민해야 한다.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웰니스는 우리 사회의 문화가 되어 그 중요성과 가치를 높여갈 것이기 때문이다.
1) ‘덤벨경제’란 건강 및 체력 관리를 위한 지출이 증가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2) 마음챙김명상을 일반화한 대표적 연구자인 카밧진(Kabat-Zinn)은 마음챙김을 순간순간 펼쳐지는 경험에 대해 의도적으로 바로 그 순간에, 평가하지 않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통한 알아차림으로 정의하였다.
3) 서밋오브마인즈는 최고의사결정권자 등을 위한 거시분석을 제공하는 콘텐츠 플랫폼인 ‘먼슬리 바로미터(Monthly Barometer)’에서 주최하는 연례행사로, 경제학자인 티에리 말르레(Thierry Malleret)가 주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