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63, 리서치, 전략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관계의 온도, 휴먼 이모션

AI와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언제 어디서나 사람을 만나지 않고도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편리함이 커질수록 역설적으로 “무언가 빠져 있다”는 공허함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함께 늘고 있다. 화면을 통해 수많은 회의를 하지만, 깊이 있는 관계를 쌓았다는 느낌은 들지 않고, 메신저와 이메일 기반의 소통 외에 진짜 기억에 남는 만남은 줄어들고있다.
이런 맥락에서 Human Emotion(휴먼 이모션)은 기술 중심 설계의 한계를 보완하는 핵심 가치로 부상하고 있다. 기술이 제공하는 효율성과 속도 위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서적 연결, 공감, 온기를 어떻게 더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는 중이다.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누군가의 표정을 직접 읽고, 같은 공기를 마시며, 옆에 앉은 사람과 우연히 대화를 나누는 경험을 대체할 수는 없다. 휴먼 이모션은 기계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오히려 더 중요해진 감정, 공감, 관계의 층위를 의도적으로 설계하려는 관점을 가리킨다. 함께 웃고, 놀라고, 고민하고, 성취를 나누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관계의 질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개념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불확실성이 일상화된 시장에서 소비를 움직이는 변수는 오히려 이성보다 ‘감성’이라고 입을 모은다. MICE 현장에서의 감정 경험 역시 이러한 흐름과 맞물려 있다. 참가자가 특정 개최지나 행사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피곤함과 혼잡함이 아닌, 따뜻함과 연대감이 되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배경으로 번아웃 시대, 정서적 유대를 설계하는 기업과 브랜드가 등장하고 있다. 팬데믹 동안, 사람들은 화상 회의와 하이브리드 이벤트의 급격한 확산을 경험했다. 초기에는 이동 시간과 비용을 줄여주는 효율성으로 환영받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화면 디지털 피로(digital fatigue), 집중력 저하, 거리감 등이 누적되었다. 카메라 앞에서 종일 미팅을 하다 보면, 표정과 몸짓, 공간의 분위기 등 미묘한 비언어적 신호가 사라진 자리를 대신 채운 것은 피곤함과 무감각이었다. “기술적으로는 언제나 연결되어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더 고립된 느낌”이라는 역설이 일상적인 감각이 된 것이다. AI 챗봇과 연애하는 사례가 등장할 정도로, 디지털 환경 속에서조차 사람들은 결국 감정적 지지와 관계감을 필요로 한다. 실제로 하버드비즈니스리뷰가 소개한 2025년 생성형 AI 활용 사례 분석에 따르면, 작년 대비 AI를 자기 성찰, 정서적 위로, 동기 부여, 일상의 조언 등 감정과 관련된 용도로 AI를 활용하는 비중이 크게 늘었다.
휴먼 이모션이 강조하는 것은, 이처럼 디지털로 채워지지 않는 인간적 온기를 회복하는 경험이다. 이제 기업들은 단 한번의 거래에서 만족하지 않고 소비자의 장기적인 감정 파트너로서 기능하기를 원한다. 하버드경영대학원 마케팅 부교수 장순위안(Shunyuan Zhang)이 최근 발표한 연구1에 따르면, 에어비앤비 거래 데이터 분석 결과 호스트가 웃고 있는 프로필 사진을 등록할 경우 해당 숙소 수요가 평균적으로 약 3.5%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소가 불확실성에 대한 지각을 낮추고 심리적 안심을 높여 결국, 구매 의사로도 이어지는 ‘스마일코노믹스(smile-conomics)’ 효과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이처럼 화려한 비약보다는 조용한 축적으로 소비자에게 정서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브랜드들이 증가하고 있다.

자료: 동아비즈니스리뷰. (2025). 2026 Business Trend Insight. DBR 424호.

두 번째로는 최근 사회문화 담론에서 모방과 자기복제의 시대를 지나 본질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 경험 자본이 쌓일수록 인간만의 고유한 성질과 관계 능력에서 격차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회성 유행과 자극적인 콘텐츠보다, 진짜 사람과 장소, 이야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트렌드 코리아 2026에서 제시된 ‘근본이즘’은 급변하고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변하지 않는 가치와 원조, 클래식, 아날로그 감성에 대한 선호가 커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AI가 만들어내는 세계가 확장될수록, 오히려 사람들은 “역사가 켜켜이 쌓인 전통”, “처음 시작한 원조”,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고전”에서 안정감을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가 과거의 문화와 공간에 매력을 느끼는 현상은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시대에 대한 향수를 뜻하는 ‘아네모이아(anemoia)’ 개념으로도 설명된다. 레코드 숍, 필름 카메라, 클래식 바, 오래된 식당 같은 공간이 다시 사랑받는 이유는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서와 이야기 때문이다.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천편일률적 성공담보다는 결핍과 실패를 포함한 진짜 이야기를 공유하는, 오래 함께할 수 있는 신뢰 기반의 관계가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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