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53, 데스티네이션, 전략, 트렌드

글로벌 시그니처 콘텐츠와 협업하는 데스티네이션

길고도 짧았던 비대면 시대가 막을 내렸다. 국가 간 이동이 다시금 용이해지고, 관광·MICE 시장의 볼륨이 커지면서 글로벌 MICE 데스티네이션(Destination, 목적지) 간 경쟁도 더욱 치열해진 요즘이다. 작게는 지역 차원에서, 더 크게는 정부 차원에서 각국 또는 목적지를 홍보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으며, 그 기법과 전략 또한 더욱 세분되고 다양해지는 추세다.
기본적으로 데스티네이션 마케팅은 여타 산업 분야의 마케팅 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료 분석에 기반하여 구체적인 목표 타겟을 설정하고, 지역을 브랜딩하여 온·오프라인 플랫폼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각종 홍보 활동을 이행하는 것이 기본적인 골자다. 그러나 다른 마케팅 전략과 구분할 수 있는 한 가지 특장점이 있다면, 산업 내외부 이해관계자와의 협업 가능성이 매우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정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닌 다양한 개체가 어우러진 지역의 경험을 홍보함으로써, 여러 구성요소의 매력을 무궁무진한 협업을 통해 홍보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데스티네이션으로서 베뉴의 홍보 효과를 극대화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도시 전체의 브랜딩을 지원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MICE 개최지 홍보에 있어 글로벌 시그니처 콘텐츠를 활용하고자 하는 데스티네이션이 눈에 띄고 있다. 이미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확보하고 방대한 팬덤을 구축해놓은 콘텐츠를 활용함으로써, 해당 이미지를 데스티네이션에 연결하고 투영하려는 전략이다. 이에, 본 고는 글로벌 시그니처 콘텐츠와 데스티네이션 간 협업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MICE 목적지로의 성공적인 콘텐츠 적용 사례를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데스티네이션 전략을 기반으로 한 국내 MICE산업의 새로운 브랜드 비전과 가치 창출을 촉진할 예정이다.

콘텐츠가 곧 브랜드가 되는 시대, ‘시그니처’의 진정한 의미
‘시그니처(Signature)’란 서명, 특징이라는 뜻을 가진 영단어다. 여기서 파생된 개념으로 파인 다이닝과 같은 고급 요리 전문 식당에는 ‘시그니처 디시(Dish)’가 있고, 카페에는 ‘시그니처 메뉴(Menu)’가 있으며, 이는 모두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독창적인 상품 또는 서비스’라고 설명되고 있다. 이처럼 현대 사회에서 ‘시그니처’란 브랜드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고 기업의 가치나 방향성을 소개하는 용도로서 사용된다. 또한, 시그니처의 개념은 브랜드 아이덴티티(Brand Identity, 이하 BI)와도 유사한 결을 가진다. 궁극적으로 BI는 다른 브랜드와 차별되는 ‘해당 브랜드만의 자기다움’을 뜻하며, 브랜드 개성을 토대로 가치 있는 기업 이미지를 구축해 자사 팬덤을 확장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기 때문이다.
성공한 브랜드는 고유한 인상을 준다는 말이 있다. 브랜드가 시그니처 BI를 보유하게 될 경우, 그 활용 효과는 더욱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관한 대표적 사례로는 애플(Apple)을 들 수 있겠다. 경영 위기가 닥쳤던 1980년대 당시, 애플은 브랜드의 철학, 신념, 비전 등을 총집합한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라는 광고 캠페인을 탄생시킴으로써 글로벌 브랜드로 재도약했다. 음악의 존 레넌(John Lennon), 미술의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등 다양한 장르의 유명인사들을 차용해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는 애플의 핵심 가치를 정립하고, ‘혁신’이라는 상징적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는 애플이 가진 특유의 창조적인 정신력을 강조함으로써, 혁신의 아이콘이라는 정체성을 가지는 순간이 되었다.

“대형 콘텐츠의 힘을 빌려라”… 협업의 가치와 데스티네이션의 역할
위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잘 만들어진 콘텐츠는 그 영향력이 막대하며, 스토리텔링에서도 엄청난 이점을 갖는다. 물론 이러한 상호작용의 기저에는 소셜 미디어를 통한 고객 경로의 변화가 주효했다. 디지털 시대, 커뮤니티로 결합한 수많은 개별 집단 속에서 현재의 고객들은 자신에게 필요 없는 스팸이나 광고를 적극적으로 거부하기 때문이다. 현재 고객 경로를 구성하는 5A, 인지(Aware), 호감(Appeal), 질문(Ask), 행동(Act), 옹호(Advocate)의 과정에서 일차적 인지를 통해 호감의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다면, 고객에게 다가가기란 더욱 어려워진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그니처 콘텐츠는 기업과 고객 간 초기 상호작용의 과정에서 인지도와 관심을 쌓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콘텐츠를 통해 서로가 연결된 이후, 궁극적으로 고객들의 브랜드 옹호 의사가 곧 브랜드 충성도로 전환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분명, 과거에는 막대한 자본력을 배경 삼아 전통적인 마케팅에 주력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미디어를 통한 홍보보다도, 소비자들에게 인정받는 고유한 콘텐츠를 기반으로 창출되는 자발적 홍보와 입소문이 더욱 중요해진 시대다. 무엇보다 생명력 있는 콘텐츠는 팬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게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콘텐츠가 곧 상품인 시대, 데스티네이션이 곧 참가자 팬덤을 결속하고 모집시키는 하나의 플랫폼이 될 수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MICE산업에서 ‘글로벌 시그니처 콘텐츠’는 어떻게 접목되고 있으며, 또 이를 확보한 데스티네이션들은 어떠한 국제적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을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참고자료] 필립 코틀러(2017). 필립 코틀러의 마켓 4.0. 더퀘스트

최근 데스티네이션 마케팅 전략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과거와 같이 광범위한 주제를 통해 사람들을 모집하고 그 후 커머스 요소를 결합하려는 전략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이제는 커뮤니티와의 양방향 소통을 통해 기존의 마케팅적 한계를 극복하거나, 로컬 비즈니스와의 더욱 긴밀한 결합을 추진하는 식이다. 무엇보다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참가자들이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이에, 글로벌 데스티네이션들은 ‘목적지 비전 전달’과 ‘핵심 정체성 구축’을 위해 글로벌 시그니처 이벤트를 주요 콘텐츠로서 활용하고 있다.
콘텐츠 간 결합으로 시그니처 파워를 공고히 하는 브랜드도 있지만, 아직 독립적인 브랜드 가치를 구축하지 못한 곳이라면 브랜드 시그니처를 만들기 위해 이미 완성된 콘텐츠의 힘을 빌리는 전략도 중요하다. 이에 글로벌 데스티네이션의 협업 성공사례를 통해, 그 이면에 있는 시그니처 콘텐츠의 활용 가능성과 효과를 고찰해 보았다.

사례 ①  | TED와의 만남… ‘시그니처 콘텐츠’ 발굴에 나서는 캐나다
다보스와 함께 세계 양대 지식 공유 포럼으로 꼽히는 ‘태드(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 이하 TED)’는 미국-캐나다 비영리 재단에서 운영하는 연례 국제 컨퍼런스다. 매년 각 분야의 저명인사와 괄목할 만한 업적을 이룬 전문가 등을 화자로 초대해 약 18분가량의 강연(TED Talks)을 진행한다. 특히 ‘알릴 가치가 있는 생각들(Ideas Worth Spreading)’이라는 슬로건 하에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가진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서로의 의견을 논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이에 공식 유튜브 채널에는 약 4.4천개의 동영상이 올라와 있을 정도로 매번 다양한 강연 콘텐츠를 배포함으로써, 전 세계 수많은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테드에서만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를 위해 현장으로 모이는 참가자들 때문에 매년 약 5,000달러(한화 약 원)에 달하는 티켓은 전석 매진된다고 한다.
이런 테드가 올해는 데스티네이션 캐나다(Destination Canada)와의 협력을 발표했다. 두 기관의 공동 주최를 통해 ‘TED@DestinationCanada’를 기획한 것이다. 특히 비영리 미디어 단체가 국가 관광 기관과 파트너십을 맺은 것은 이번이 최초라는 점에서 해당 소식은 더욱 큰 화제를 모았다. 첫 번째 행사는 2월 23일, 뉴욕 소호의 테드 극장(TED Theater)에서 개최되었으며, 행사의 주제는 ‘개방성(Open)’이었다. 캐나다의 전 지역에서 찾아온 저명한 연사들과 함께 각 강연은 다양한 주제로 꾸려졌지만, 모두 캐나다의 사람, 문화의 다양성을 다루고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이에, 데스티네이션의 비즈니스 개발 수석 이사인 버지니아 드 비셔(Virginie De Visscher)는 “테드와 캐나다의 협업은 글로벌 커뮤니티를 발전시키고, 혁신과 리더십, 사고의 확장이라는 주요 개념을 데스티네이션과 연결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례 ② | 세계 최대 기술 커뮤니티 두 곳이 힘을 합치다, ‘CES × WSAI’
CES 언베일드 암스테르담(CES Unveiled Amsterdam)은 월드 서밋 AI(World Summit AI)과의 새로운 파트너십을 통해 암스테르담을 글로벌 기술 진원지로서 강화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소비자기술협회(Consumer Technology Association®, 이하 CTA)와 인스파이어드 마인드(Inspired Minds™)의 플래그십 행사인 월드서밋AI(World Summit AI, 이하 WSAI)이 올해 10월, 글로벌 기술 서밋인 WSAI에서 ‘CES 언베일드 암스테르담(CES Unveiled Amsterdam)’을 공동 개최한다는 소식이 발표된 것이다.
CES 언베일드 암스테르담은 네덜란드 경제 및 기후 정책부(Dutch Ministry of Economic Affairs and Climate Policy)와 협력하여, WSAI 둘째 날인 2023년 10월 12일 태츠 아트 & 이벤트 파크(Taets Art & Event Park)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이번 CES 언베일드 암스테르담은 ‘하나의 세상을 위한 기술(Tech for ONE World)’를 주제로 글로벌 이슈를 해결하기 위한 산업과 국가 간 협업에 초점을 맞춘 전시회와 컨퍼런스 프로그램을 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컨퍼런스 세부 주제에는 지속가능성, 최신 글로벌 기술 동향, CES 2024에서 기대할 사항 등이 포함된다. 이에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협업을 통해 암스테르담은 기술 혁신을 위한 유럽 최고의 글로벌 데스티네이션으로 자리매김할 예정이며, 가장 영향력 있는 기술 행사로서 역할을 톡톡히 할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CTA 및 CES의 수석 부사장 킨제이 파브리치오(Kinsey Fabrizio)는 “기술은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 걸쳐 주요 변화를 주도하고 있으며, 유럽과 전 세계의 AI의 영향력을 조명하는 이번 파트너십을 통해 암스테르담에서 최신 AI 혁신과 관련된 기술 동향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사례 ③ | 엑셀 런던, 종합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디즈니’와 전시 콘텐츠 협업
엑셀 런던(ExCeL London, 이하 ExCeL)은 지난해 첫 번째 몰입형(immersive) 경험 기반 전시회인 “쥬라기 월드(Jurassic World: The Exhibition)’의 기록적인 성공을 거둔 데 이어, 올해 세계 최초로 ‘디즈니100(Disney100: The Exhibition)’ 인터렉티브 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올해 10월, 엑셀 런던이 위치한 산업지구 로열 독스(Royal Docks)에서 문을 여는 이번 행사는 월트디즈니아카이브(The Walt Disney Archives)1)가 지금까지 개최한 전시회 중 가장 큰 규모로, 미국의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월드 디즈니사의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4년도까지 이어지는 이번 디즈니 전시회는 약 1860㎡(20,000sqft) 규모로 진행되며, 움직이는 이야기(moving stories), 디즈니의 역사적 유물, 오리지널 의상 및 인터랙티브 전시물 등을 특징으로 하는 10개의 테마 갤러리가 운영될 것으로 예정되어 있다. 이번 런던 에디션은 미국 필라델피아(Philadelphia, USA)의 프랭클린 인스티튜트(Franklin Institute)와 뮌헨(Munich)의 올림픽 홀에서 진행했던 기존 레지던시2) 프로그램을 따를 예정이며, 혁신적이고 몰입감 있는 기술을 활용해 디즈니의 마법같은 순간을 실제 현장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이에, ExCeL의 어트랙션 및 라이브 이벤트 책임자인 데미안 노먼(Damian Norman)은 “월트 디즈니와 디즈니 100만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사랑받는 브랜드는 전무하다”며, “이번 행사를 기획하는 데 4년이 걸렸고, 많은 제작 소품들이 처음으로 전시될 예정인 만큼 전시회에 방문한 참관객들이 다양한 볼거리를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글로벌 시그니처 콘텐츠’, 브랜드를 기반으로 시장과 정면 돌파
글로벌 시그니처 콘텐츠는 데스티네이션의 차별화된 경쟁력과 수요 안정성을 확보하게끔 지원한다. 이는 타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독보적인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브랜드 마케팅 전략으로써, 커뮤티티를 통해 주요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도하려는 기타 이해관계자들에게도 신뢰감을 제공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 같은 협업 시도는 비단 데스티네이션 차원에서만 적극적으로 추구한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기업의 적극적인 협업 구조 형성 및 지속적인 파트너 관계 유지를 위한 전략 구축과 함께, 국가적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을 기반으로 글로벌 데스티네이션 경쟁력을 고취할 필요가 있겠다.
결국, 핵심은 영향력 있는 콘텐츠(브랜드, 행사 등)와 MICE의 융합이다. 단순 글로벌 시그니처 콘텐츠의 도입을 넘어, 콘텐츠, 문화, 미디어 전략을 종합적으로 강화함으로써 행사 및 데스티네이션의 ‘브랜드 시그니처’를 공고히 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토대로 데스티네이션의 고유한 콘셉트와 행사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함으로써, 국내 MICE 시장이 더욱 활성화되고 다양한 분야의 업계 트렌드를 선도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1) 월트 디즈니 아카이브는 월트 디즈니가 시작한 독특하고 오래 지속되는 창의적 유산을 인정하여 그와 그가 설립한 회사와 관련된 역사적 자료를 수집, 보존 및 연구용으로 제공하기 위해 1970년 설립됨.
2) 예술가들에게 일정 기간 거주 · 전시 공간, 작업실 등 창작 생활 공간을 지원해 작품 활동을 돕는 사업으로, 주최 기관은 관광 프로그램과 연계시켜 지역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고, 시민들은 해당 예술가의 전시나 워크숍 등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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