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비즈니스 이벤트 산업은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시대는 쉬지 않고 변하기 마련이지만, 코로나19는 너무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뒤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주최자들은 팬데믹, 경제 침체, 디지털 전환 등의 격동적인 사회환경 변화 속에서도 참가자를 유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쇼(No-show) 비율은 지속해서 증가하고 행사 예산은 삭감되고 있으며, 프로그램과 디자인의 경우 모두가 천편일률적인 지침을 따라 서로를 복제하고 있는 것만 같다. 불 확실성의 시대로 불리는 현재, 대체 불가능한 이벤트를 기획하고 수익성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점검해야 할까?
해결책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바로 모든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인 참가자, 즉 사람들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최고의 이벤트’, ‘업계 최대 행사’와 같은 표면적 의의 강조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실제로 행동하고 생각하는 방식에 따른 참가자 친화적인 설계도를 도입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업계 전문가들이 이벤트 심리학(event psychology)이라고 일컫는 ‘행동학 관점의 이벤트 경험 디자인’에 접근해야 한다.
따라서 GMI는 앞으로 ① 2023년 이벤트 디자인 개선을 위한 세 가지 과학 기반 전략, ② 효과적인 이벤트 마케팅 이면의 심리학, ③ 심리학을 기반으로 전시회 경험을 디자인하라 ④ 경험형 이벤트에서 참여형 이벤트까지: 최고의 설계 전략, ‘이벤트 심리학’까지 총 4편의 기고 시리즈에 걸쳐 전문가와 함께 경험 디자인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색해보고자 한다. 시리즈를 함께할 기고자, 빅토리아 마티(Victoria Matey)는 2022년 MICE산업 전문 미디어 스마트미팅(Smart Meetings)을 통해 ‘올해의 회의 전문가(Meeting Professional of the Year)’로 선정되었으며, 17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한 경험 디자인 전문가다. 또한, 이벤트 컨설팅 업체 마티 이벤트(Matey Events)의 공동창업자이자 비즈니스 이벤트 전문가로서 IMEX America, MPI, EventMB 등의 국제적 기업 및 행사에서 강연을 진행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시리즈를 통해서는 이벤트 심리학 기반의 접근법을 적용하여 이벤트 설계를 강화하기 위한 연구 기반 솔루션뿐 아니라 행동 개념에 토대를 둔 다양한 성공전략을 소개할 예정이다. 본 고에서는 경험 디자인 시리즈의 시금석으로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행동과학 기반의 이벤트 디자인 전략 세 가지를 조명해 보았다.
비즈니스 이벤트와 심리학의 인과관계 분석
이벤트는 본질적으로 사람과 사람 간의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하는 활동이다. 제5의 미디어라고도 불리는 이벤트는 일반적인 4대(TV, 신문, 라디오, 잡지) 매스미디어(Mass Media)와 달리 직접적, 쌍방향적, 개인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모두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즉, 비즈니스 이벤트는 다면적, 정기적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상호작용인 셈이며, 이는 이벤트 경영전략이 심리학에 기반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심리학 기반의 접근법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부터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과 소통, 그로 인해 감정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까지 이벤트 전반에 걸쳐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지원하는 데 도움이 된다. 따라서 단계별로 이해당사자들의 기저에 깔린 심리 그리고 행동과학적 원칙 등을 분석한다면 복잡한 이해관계의 조율도 더욱 평이해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마케팅 솔루션 업체 마리츠(Maritz)의 최고행동책임자(Chief Behavioral Officer, 이하 CBO) 샬롯 블랭크(Charlotte Blank)는 “행동과학은 무의식적인 영향 요인을 연구함으로써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해 효과적으로 예측 및 지원한다”며, 경험 디자인과 행동과학의 접목 효과에 주목할 것을 당부한 바 있다. 다양한 가치와 관점이 공존하는 현시대마저도 본질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근원에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일으킨 본질의 재정립… ‘경험 디자인’의 진정한 목적이란
현재 사회에서는 팬데믹이 초래한 생활방식의 변화가 경험경제라는 시장 시스템과 접목하면서, 본격적으로 ‘경험’이라는 가치 동인이 부상하게 되었다. 고객 경험을 중시하는 기업의 태도는 핵심 경쟁력으로서 떠올랐고, 이에 따라 MICE 산업 내에서도 경험 디자인 전략이 더욱 강조되는 추세다. 실제로 EVENTMB가 2019년 발표한 ‘이벤트 경험 디자인의 과학(The Science of Event Experience Design)’ 보고서에 따르면, 1천여 명의 이벤트 전문가 중 경험 디자인의 중요성에 대해 인지하고 높은 이해도를 보유한 기획자 비율은 총 67%로 나타났다. 탁월한 경험의 설계는 곧 고객의 충성도와 지지율 상승을 유도하는 전략적 차별화 요소이기 때문이다. 전문가 의견에 따르면 앞으로도 경험 디자인 전략의 도입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한편, 이들에게 “대면 경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What is the most crucial element of planning live experience?)”에 대해 질문한 결과, ‘참가자 관여도(Engaging attendees)’와 ‘추억 만들기(Creating memories)’라고 답한 비율이 각각 39%, 23%로 상위권을 차지했다. 이는 궁극적으로 기획자들이 이벤트를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를 가시적으로 설명해주는 지표다. 결국, 경험 디자인 전략의 목적은 참가자 경험을 향상시켜 더욱 가치 있는 이벤트를 기획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
글로벌 베스트셀러 경험경제(experience economy)의 저자 제임스 길모어(James H. Gilmore)는 “경험은 고유의 개인적인 방식으로 고객을 참여시키는 기억에 남는 사건(event)이지만, 온디맨드 형태로 제공되는 서비스와 달리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전개된다”고 전했다. 즉, 이벤트를 통한 경험은 개인적이며, 기억에 남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생생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행사가 끝난 이후에도 참가자에게 계속해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고유의 경험을 창출해야 하며, 이것이 바로 경험 디자인을 정의하고자 하는 목표다.
심리학 기반 접근법은 이벤트 경험 디자인 설계에 있어 참가자 행동을 분석하고, 각각의 특성을 어떻게 도입시켜야 하는지에 대해 통찰력을 제공할 뿐 아니라 주최자 측에도 구체적인 역할과 과업을 확립시킨다. 이에, 빅토리아는 이번 기고를 계기로 ① 선택 과부하 ② 비이성 ③ 자기 참조 등의 행동과학을 소개하며, 심리학 기반 접근방식의 기반에 대해 설명했다.
전략 ① | “인간은 인지적 구두쇠”… 선택 과부하의 역사
본격적인 탐구에 앞서, 우리는 인간이 ‘인지적 오류를 범하는 존재(cognitive miser)’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Susan Fiske & Shelley E. Taylor, 1984). 행동과학자들은 구두쇠가 돈 한 푼을 아끼듯이 사람들이 생각을 아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간의 두뇌는 중요한 일을 수행하기 위해 에너지를 보존하도록 진화해 왔으며, 생존을 위해 항상 의도적으로 인지적인 노력을 피해왔기 때문이다. 본능적으로 에너지가 덜 소모되는 일을 선호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결국,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들 하나 ‘선택지가 많을 수록 좋다’라는 단순한 가정은 잘못된 결론으로 귀결된다(Schwartz, 2004). 우리는 스스로의 행동과 판단의 근간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적인 영향을 인지하지 못한 채 이성적인 논리에 따라 결정을 내린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선택권이 많아질 경우 결정을 잠시 중단하거나 지연시키는 경향이 있으며, 심할 경우 결정 자체를 거부하기도 한다(Iyengar & Lepper, 2000). 또한, 연구1)에 따르면 결정에 대한 만족도는 선택의 수와 반비례의 관계인 역 U자형 모델을 따른다. 이벤트 디자인의 관점에서 이러한 전제는 선택이 복잡해질 때마다 참가자의 관여 수준이 낮아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일례로 일부 행사에서는 등록 시 여러 개의 다양한 질문목록을 전달하며 모든 항목에 응답해 달라고 요청하는 반면, 어떤 행사는 원클릭(One-click)으로 해결 가능한 간편 등록을 지원하곤 한다. 이런 경우, 둘 중에 더욱 많은 등록을 유도하는 행사는 무엇일까? 당연하게도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안타깝게도 전자와 같은 ‘선택 과부하(overchoice)’ 옵션은 비즈니스 이벤트 업계에서 매우 흔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저명한 행동경제학자이자 듀크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인 댄 애리얼리(Dan Ariely)는 TED 강연을 통해 “인간의 비이성이 가질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에 주목하고 이를 합리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선택의 개수를 줄이는 것은 이벤트 과정의 전반에서 참가자의 인지 과부하를 줄여 판단을 용이하게 만들고 참여도를 높일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다. 주최자로서 이벤트의 핵심 주체인 참가자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행동하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 이들에게 요구되는 모든 행동을 쉽고 간단하게 바꾸는 것이 중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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