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임금이 인력 유입 막는다는 클리쉐…정말일까?
‘MICE산업=낮은 임금’의 공식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듯하다. 국내외를 막론한 여러 MICE 전문가들은 “낮은 임금이 종사자들의 근무 만족도를 월등히 떨어뜨리는 바람에 팬데믹 이후 인력들이 완전히 등을 돌린 것”이라고 진단했었다. 그러나, 최근 그간의 믿음과는 사뭇 다른 조사결과가 발표되어 시선을 모으고 있다. MICE산업을 둘러싼 편견을 부수는 결과였다.
글로벌 전시컨벤션 시장을 조망하는 매체 매쉬미디어(Mash Media)는 구인·구직 플랫폼 ‘이벤트허브잡(Event Hub.jobs)’과 함께 ‘2022년 이벤트산업 연간 임금 현황 조사’를 실시, 상세한 조사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공개했다. 해당 보고서에는 1,200명의 영국 내 전시컨벤션 분야 종사자들이 참여했으며, 씨벤트(Cvent) 세일즈팀의 선임매니저, 베뉴콜렉션(The Venue Collection)의 사업매니저, 인포마(Informa)의 HR매니저, 회의산업협회(Meeting Industry Association, 이하 MIA) 회장 등이 자문위원으로 합류하여 설문결과에 관한 실무적 해석을 내놓았다.
의외의 결과…“해외 MICE 종사자 46%, 현재 급여에 만족한다”
현재 받는 급여에 관한 만족도 조사에서 응답자 45%가 “만족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만족도가 그다지 높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던 자문위원들도 해당 결과에 뜻밖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본 조사의 책임연구자인 로버트 케너드 대표는 “의외의 결과”라면서 “인력난이 임금상승과 연결되는 작금의 현상을 보고 MICE산업의 저임금 구조가 인력난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판단했었는데, 정작 설문결과를 보니 임금만이 문제는 아닌 듯하다”라고 분석했다.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2022년 영국 MICE산업 종사자 중 27%는 런던 소재 직장인들의 평균 급여(50,000파운드, 한화 약 8,399만 원)를 훌쩍 넘는 수준인 65,000파운드(1억 919만 원)를 받고 있다. 물론, 해당 데이터는 행사를 총괄하는 임원급(Event director급 이상)에 해당하는 현황이다. 일반직급의 경우, 평균 임금으로36,000파운드(한화 약 6,043만 원)를 받고 있는데, 이는 영국 전체 산업의 평균 임금(5,204만 원)을 상회하는 수준이다. 영국 엣지호텔학교(Edge Hotel School)의 앤디 보어(Andy Boer) 학과장은 “이러한 현황지표는 MICE산업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신규 인력 유입에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정보”라고 말했다.
현재 임금에 만족하는 이유는?…“일한 만큼 정당히 대우받고 있다”
현재 임금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한 응답자 중 25%는 맡은 업무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고 있다고 답했다. 또한, 주변 동료에 비해서 더 나은 처우를 누리고 있다고 느끼는 것(18%)도 임금 만족도를 높이는 요인이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아울러, 편안한 생활을 영위하기에 충분한 급여를 받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18% 비중을 차지했고, ‘맡은 역할만큼의 급여를 받고 있다’는 문항과 ‘급여 외 다른 방식으로도 처우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문항에 각각 16%의 응답이 모였다.
반면, 현재 처우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한 응답자 중 32%는 ‘물가(생활비)상승분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 상승폭’에 불만을 표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응답자 중 26%는 ‘당초 맡은 직무에 비하여 더 많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을 불만족 요인으로 꼽았다. 이에 대해 케너드 대표는 “업무 체계와 분장이 모호한 조직에서 인력의 불만족 현상이 빈번히 발생한다”며 “MICE산업은 기존 인력의 이탈을 막으려면 먼저 명확한 직무 기준과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앤디 보어 학과장은 “사실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고정적으로 틀이 정해진 업무 영역만을 가지고 갈 수는 없다”면서 “엣지호텔학교에 다니는 학부생들에게 시대적 변화로 인하여 업무와 역할에 대한 개념이 혁신성 증진을 목적으로 보다 유연하게 바뀌고 있다는 점을 가르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생활비 이슈에 관한 불만족 요인은 근무환경이나 복지 등 당장의 임금상승 이외로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고 덧붙였다.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응답자 중 37%, “성장 가능성 있다”
목표로 하는 임금 수준으로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에 관한 질문에 응답자 중 37%가 긍정적 답변을 내놓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심지어 응답자 중 27%는 이미 목표로 하는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응답자 중 절반 이상이 임금에 대한 현황과 전망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잘 모르겠다거나 부정적으로 답한 응답비율은 42%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 중 ‘목표 급여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21%에 그쳤다는 점은 상당히 놀라운 결과다. 이에 대해 씨벤트의 펠리시아 아시에두(Felicia Asiedu) 팀장은 “상당히 많은 응답자들이 MICE산업에서도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에 주는 시사점이 상당하다”고 해석했다.
임금을 인상해야 한다면 얼마나 올려야 할까?…“물가상승률 적용 필요”
해외 MICE 종사자들이 원하는 임금인상의 핵심은 물가상승률과 맞물려있다. 아시에두 팀장은 “MICE 종사자들이 대대적인 임금인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최근 심화되고 있는 생활비 부담을 덜고자 하는 심리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의 경우 팬데믹 이후 급격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물가가 크게 상승한 바 있다. 치솟는 생활비를 걱정하는 국민들의 근심은 깊어져 갔고 시장 경제에도 영향을 미쳤다. 올해 5월만 해도 영국의 전년대비 물가상승률은 8.7%였다.
임금인상률에 관한 조사결과 또한 아시에두 팀장의 설명을 뒷받침한다. 응답자 중 대다수가 물가상승률에 준하는 5-10%와 10-20%의 인상률이 적당하다고 답했다. ‘MICE산업=저임금’이라는 오명이 팽배하게 퍼진 것에 비하면 파격적 처우 개선을 원하는 응답자는 예상외로 상당히 적었다. 아시에두 팀장은 “임금에 물가상승분을 반영해주는 것만으로도 종사자들은 큰 도움을 받았다고 느낀다”며 “기본 생계에 대한 고통을 분담해주는 것도 인력 유출을 막는 좋은 전략이 된다”고 말했다.
해외 MICE 업계는 어떤 복지를 제공하고 있을까?
본 설문조사의 자문위원들은 인력난의 원인을 임금에서만 찾으려는 관점을 타파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오랜기간 MICE산업에서 저임금에 대한 문제의식이 제기되어 왔던 것에 반하여, 실제 종사자들의 불만은 그다지 크지 않음을 눈여겨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의 다각화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글로벌 행사기획사 DRPG의 대표 데일 파멘터(Dale Parmenter)는 “단순히 급여를 더 주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며 “경제활동의 궁극적 목적은 편안한 삶과 일상을 지키는 것이므로, 삶에 대한 종사자들의 근심을 덜어주는 복지혜택들이 임금인상보다 더 큰 만족도 상승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해외 MICE 업계에서 제공하고 있는 복지에 관한 설문조사를 들여다보니, 절반 이상의 종사자들이 ‘하이브리드 근무체제(63%)1)와 ‘사측에서 제공하는 휴대폰(60%)’을 현재 제공받고 있는 복지혜택으로 꼽았다. 이어 ‘원격근무 제도(53%)’와 ‘유연한 업무공간 활동(54%)’ 등도 많은 기업들이 시도하고 있는 혜택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밖에 ‘성과급(47%)’, ‘건강보험(41%)’ 등도 상위권에 속했다.
파멘터 대표는 “과거와 달리 요즘 종사자들이 원하는 복지는 근무환경 개선에 집중되어 있다”면서 “어디에서든, 언제든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여 일과 삶의 균형 맞춤에 자율성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