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영
한국무역협회 북경지부 부장
상하이 엑스포 한국기업연합관 실무 담당
‘박람회 경제학’저자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을 빨아들였던 여수 엑스포가 막을 내렸다. 국토의 남쪽, 아름다운 바닷가 도시이지만 세계적으로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별 관심을 받지 못하던 인구 30만의 작은 도시 여수에서, 석 달에 걸쳐 세계의 축제를 개최했고, 무사히, 훌륭히 끝마쳤다. 여수 엑스포를 관람한 개인적인 소감은 ‘기대 이상’이었다. 작고 아담한 공간을 최선을 다해 아기자기하게 꾸민 태가 역력했다. 눈을 돌리면 바다가 있었고 간간이 싱그러운 바람이 땀을 닦아주었다. 정부, 조직위, 각 전시관, 여수 시민 등 관계자들의 노고가 느껴졌다. 엑스포가 끝난 후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성패 여부에 대해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성공이라 부르짖는 사람들은 주로 애초 목표했던 800만 관람객을 넘겼으니 성공 아니냐고 했고, 실패라 단언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적자와, 빗나간 관람객 예측과 이로 인한 행사 후반의 길고길었던 대기시간, 혼란스러웠던 입장권 예약 및 할인정책을 얘기했다.
전문가들은 엑스포의 성패를 따질 때 주로 관람객 수 및 참가국/기구/기업 수, 관람객 및 참가자 만족도, 기획·운영, 주제구현, 도시개발 및 균형발전, 흑자·적자 여부, 사후 시설 관리·활용, 교육·국민의식 함양효과 등을 보게 된다. 여수 엑스포는 당초 세계 경제 침체에 따라 참가율 저조가 우려되었으나 결국 104개국, 10개 국제기구가 참가하여 명실상부한 ‘세계’ 박람회였고, 현대자동차그룹, 삼성, SK텔레콤, LG, GS칼텍스, 롯데, 포스코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들도 각기 역량을 총동원하여 미래 비전을 보여주는 전시관을 꾸며냈다.
유치 관람객 수 820만명으로 당초목표 초과달성, 외국인 관광객은 40만으로 전체의 4.9% 차지
관람객 수는 당초 목표로 했던 800만 명을 초과한 820만 명을 달성했지만, 관람객 예측이 빗나가는 바람에 목표 인원을 달성하기 위해 후반부 무리하게 할인/무료 입장권을 남발하여 아쉬움을 남겼다. 상하이 엑스포도 초반 관람객 수는 기대치 이하였지만 상하이 가정에 무료 입장권을 배포하는 등 관람객 동원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고 방학 기간이 겹쳐졌던 후반으로 갈수록 엑스포 단지는 미어터졌다. 막달인 10월 주말에는 하루에 100만 명이 넘게 입장하고 사우디관 등 일부 인기관을 보기 위해서 10시간 이상 씩 줄을 서야 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여수는 상하이 엑스포 분석을 통해 초반에 단체관람객을 유치하는 등 분산 전략이 아쉬웠다. 외국인 관람객은 40만 명이 들어와 전체 관람객의 4.9%를 차지했다. 상하이 엑스포도 외국인 관람객은 전체의 5% 수준이었다. 예산 등 여러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외국인 대상으로 더 적극적인 홍보를 펼쳐 외국인 관람객을 더 많이 유치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어떠한 엑스포도 자국 관람객이 절대다수인 것이 사실이니, ‘국내잔치’ 운운하며 폄하할 필요는 없다.
준비과정 벼락치기 여파로 관광객 불만 초래
한편 우리나라 특유의 ‘닥쳐야 한다. 그러나 마감은 기필코 맞춘다’는 벼락치기 문화는 막판까지 외국인 참가자들을 불안하게 했지만 결국 무사히 화려한 개막식을 치르고 엑스포가 시작되었다(이번 여수 엑스포 준비과정 중 벼락치기를 할 수 밖에 없던 점에는 예산문제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이 벼락치기의 여파가 각 전시관의 준비과정과 운영과 관련한 조직위와의 소통 등에까지 영향을 끼쳤는진 몰라도 상당수 국내외 참가자의 눈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 상하이 엑스포 때도 조직위의 동양적 소통방법 때문에 특히 해외 참가자들의 원성이 높았다. 그러나 상하이 엑스포는 전 국가적으로 든든하게 지원해 준 국책사업이었던 데 반해 여수 엑스포의 경우 엑스포가 임박해져서야 전국적인 이슈로 부각되는 등 상당기간 ‘지방사업’으로 묻혀있었던 데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또 폐막일이 가까워진 여름에 큰 기대를 안고 엑스포를 방문했던 수많은 관람객들의 불만이 이어졌다. 올 여름 유난했던 무더위 속에 관람객 목표를 달성하려던 조직위 덕에 어린 아기들과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까지도 10~40분 가량 소요되는 전시관 관람을 위해 수 시간을 더위 속에 서서 기다려야 했다. 오를 대로 오른 불쾌지수는 여기저기서 각종 ‘새치기’ 시비를 일으켰고, 같이 온 일행끼리마저 사소한 일에도 짜증내며 다투는 모습도 보였다. 휴가철과 무더위가 절정에 달한 시기, 수많은 국민이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휴가를 맞춰 벼르고 별러 엑스포를 보러온 7월 29일에서 31일 사이, 조직위는 모든 여수시민에게도 엑스포를 무료개방했고, 30일과 31일 하루에 27 만이 입장하며 최다입장 기록을 갱신했다(개장 초기 하루 관람객은 3~4만 명이었다). 관람객이 많아지자 수족관의 일부는 폐쇄됐고, 빅오쇼 등 각종 공연도 당초 분량보다 짧아졌다. 이 시기에 과연, 관람객들은 만족했을까?
입장권 예약정책 뒤집기로 비난 여론 형성되었으나 서비스 수준이 높았고 별다른 안전사고 없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진 행사운영
운영 면에서는 전반적으로 매끄러웠지만, 입장권 예약 정책이 오락가락했던 점이나 엑스포 단지 안팎에 식당과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부족했던 점은 아쉬움을 남겼다. 입장권 예약 정책 관련해서 많은 비난이 일었지만, 초반부 시행착오는 어느 엑스포에나 존재하게 마련이다. 오히려 조직위는 ‘반기권’을 만드는 등 발빠른 대응을 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엑스포의 특성 상 하루에 다 보기는 힘든데도 하루짜리 KTX 왕복기차표와 엑스포 입장권을 결합한 상품이 대대적으로 판매되고 엑스포 관람이 체류형 관광으로 이어지지 못해 여수 지역경제가 기대만큼 활성화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많은 이들이 걱정했던 교통문제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배려와 대중교통 무료화 등 여수시의 대담한 조치로 잘 해결될 수 있었다. 여수시민들의 10%가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나설 정도로 엑스포의 성공에 대한 여수의 열망은 뜨거웠고 그만큼의 결실을 맺었다. 엑스포 단지 내 안내요원들은 친절했고 안내지침은 세세하고 합리적이었다. 예를 들면 ‘일행 끼워주기는 새치기와 같습니다’, ‘일행이 다 모이거든 입장하십시오’라는 친절하고 합리적인 안내문을 붙이는 엑스포는 아마 전 세계에 우리나라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여러 방면에서 서비스 측면은 상하이 엑스포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우수했다. 엑스포 입장 시 소지한 음료수를 마셔보라고 하고 심지어 화장품 케이스 안에 있는 립스틱을 발라보라고도 하는 등 과도한 소지품 검사를 시행했던 상하이와 달리 여수는 라이터류 중심으로만 단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안전사고 없이 엑스포를 마무리한 것은 이번 엑스포의 안정적 운영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번 엑스포는 뭐니뭐니해도 ‘살아 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이라는 주제구현에 많은 공을 들인 표시가 났다. 기후변화, 해양자원개발, 해양보전 등 전 지구적 과제에 대한 메시지를 세계인에게 전했다. 이 메시지는 주제관, 한국관, 기후환경관 등 전시내용은 물론이고 빅오쇼를 위시한 공연, 그리고 여수선언, 여수프로젝트, 오션컴팩트, 여수메시지 등을 통해 다양한 형태로 재미와 감동을 주며 엑스포 단지를 휘감았다. 특히 폐막일 2012여수세계박람회의 정신적 유산이자 전 지구적 비전을 담은 ‘여수선언’이 채택되어 해양환경 보호의 좌표를 제시했다.
한편 여수 엑스포에서는 국내 최정상급 뮤지션 166개 팀 500명이 출연한 K-팝 페스티벌 등 모두 1만3천여 회의 문화공연이 여수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져 축제 분위기를 더했다.
도시 개발 및 균형 발전 측면에서도 여수 엑스포의 성과는 두드러진다. 상대적으로 덜 발전된 지역이었던 여수에 막대한 사업비가 투입되고, KTX가 들어오는 등 교통 인프라를 30여 년 앞당기는 SOC 구축이 이어졌다. 엑스포 단지가 들어선 곳도 여수 시내에서는 낙후지역이었지만 엑스포를 통해 개발에의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한편 여수 엑스포는 적자 엑스포로 남을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2조 1천억 원의 예산이 투입됐지만, 입장권 판매와 수익사업 실적 등이 당초 목표치에 크게 못 미쳤다. 그러나 세비야 엑스포(1992)도 적자 엑스포였지만 도시개발 등 다른 측면에선 성공적이었다는 이중적 평가를 받고 있다. 상하이 엑스포도 규모, 인프라 구축, 위상 제고, 국민 교육 등의 면에서는 성공적이었지만 재정적으로는 큰 적자를 보았다.
입포스트 엑스포 액티비티에 만전 가해야 …
이제 우리는 이미 지나간 일들을 후회하고 책망하기 보다는 여수 엑스포의 사후활용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사후 처리 문제는 엑스포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할 수도 있을 만큼 엑스포 개최 준비와 개최 자체에 못지 않게 중요한 문제이다. 여러 전문가들이 대전엑스포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파리 세계박람회 (1900년), 시애틀 세계박람회(1962년), 오사카 세계박람회(1972년), 하노버 엑스포(2000) 등 개최지는 기념공원으로 변신에 성공한 바 있다. 밴쿠버는 엑스포 폐막(1986) 후 전세계적 관광지가 되었고, 호주의 퀸즐랜즈도 브리즈번 엑스포(1988) 개최 후 호주의 이류 지역에서 국제적 관광지로 거듭났다. 리스본 엑스포(1998) 지역도 관광과 레저 기능을 갖춘 국제 수준의 주거 및 상업지구로 변모했다. 당장 장부상으로는 적자이지만 여수를 포함한 남해안 지역이 엑스포를 계기로 장기적으로 세계적 관광지로 변신에 성공한다면 여수 엑스포는 대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여수의 경우 우선 국제관, 주제관, 한국관 등 전시관과 아쿠아리움, 디지털갤러리, 스카이타워, 에너지파크 등만 엑스포 이후에도 보존되고 나머지 시설은 철거될 예정이어서 대전엑스포 만큼 심각한 시설운영 문제를 초래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복합해양리조트 단지가 목표라 한다. 중국, 일본 관광객을 겨냥해 카지노와 면세점 등을 신설하고 바닷길을 이용한 해수워터파크, 요트마리나 시설 등을 추가해 국제 해양관광단지의 면모를 갖출 예정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경기 침체 상황 하에서 상하이 엑스포의 경우도 아직 사후 관리 주체를 찾지 못했다는 점으로 볼 때 민간기업의 사업 참여 전망이 그다지 밝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여수 엑스포의 가장 큰 수확 중 하나는 한 번도 대형 국제행사를 개최한 적이 없었던 인구 30만 명의 소도시에서 모두가 하나 되어 세계적인 행사를 개최해 냈다는 자신감이다. 여수는 여수 엑스포의 로고송 ‘바다가 기억하는 얘기’ 처럼 ‘세계가 기억하는 여수’가 되었고, 이제 우리 안에는 어떤 지역에서도 국제규모의 행사를 개최할 수 있다는 소중한 믿음이 생겼다. 이 ‘믿음’의 씨앗을 대전과 여수의 ‘경험’이라는 자양분으로 키워 우리도 일본의 오사카, 아이치, 중국의 상하이와 같은 대규모 등록엑스포를 천천히 그러나 야심차게 한번 준비해 보자. 여수 엑스포의 활용문제와, 밀라노 엑스포에의 참가를 통한 국가와 기업의 성공적 이미지 마케팅과 더불어, 빅엑스포에의 도전이 우리의 다음 과제다. 여수 엑스포는 끝났지만 여수의 꿈, 대한민국의 꿈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책소개\ 박람회 경제학
‘박람회 경제학’은 기존 엑스포 서적들이 엑스포 자체를 개괄적으로 다룬 것과는 달리, 상하이 엑스포 한국기업연합관 실무를 담당했던 컨벤션 전문가 신선영이, 최초로 기업의 엑스포 마케팅에 대해 쓴 책이다. 역대 엑스포에 참가하여 기업 브랜드 이미지 마케팅을 통해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 세계 유명 기업들의 비결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또한 상하이 엑스포 현장에서 직접 보고 겪고 만들어낸 우리 기업들의 전시관과 마케팅 방식을 소개한다. 저자의 경험과 지식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엑스포 전문가 인터뷰를 통하여 엑스포에 대한 이들의 식견도 녹여냈다. 미래에 개최되는 엑스포에 기업 또는 국가로서 잘 참가하는 법, 우리나라도 여수에 이어 상하이와 같은 대형 엑스포를 개최하게 될 경우를 소망하며 엑스포를 잘 개최하는 법, 그리고 향후 밀라노 엑스포(2015년)을 시작으로 전세계적으로 2~3년 마다 개최되는 엑스포를 계속 체험하고 싶어할 많은 사람들을 위해 엑스포를 잘 관람하는 법도 안내한다.